‘KAL기 폭파 사건’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당시 국가안전기획부가 침묵을 지켜 의혹을 증폭시킨 만큼 소설에서 안기부 관련 의혹을 다뤘다 해도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부장 정원태)는 19일 대한항공(KAL)858기 폭파사건 당시 수사관이던 안기부 요원 백모씨 등 5명이 “사건이 안기부에 의해 자행된 것처럼 묘사한 책을 써 명예가 훼손됐다”며 작가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소설 속에는 KAL기를 폭파시키고 사건을 은폐ㆍ조작한 주체가 남산의 해외공작 K팀으로 나올 뿐 수사관들이 사건을 왜곡했다는 것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사건수사발표 이후에도 ▦사회 일각에서 의혹이 계속 제기된 점 ▦안기부 후신인 국가정보원에서 사건을 재조사하겠다고 발표한 점 등을 종합하면 작가가 사건의 실체와 안기부의 수사결과가 다르다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특히 “사건 이후 여러 곳에서 제기된 의혹과 진상규명 요구에도 해명의 열쇠를 쥐고 있는 안기부가 소극적 태도로 나와 사건을 둘러싼 의문을 키우거나 일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의심을 확신하게 만들었다”며 안기부의 책임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안기부의 태도 등을 동기로 사건 재수사를 촉구하기 위해 쓰여진 책은 발행 목적이 공익을 위한 것이어서 명예훼손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KAL기 폭파`는 1987년 11월 28일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을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KAL 858기가 다음날 미얀마 근해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폭발ㆍ추락해 승객ㆍ승무원 등 115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다. 88년 안기부 수사발표 이후에도 정권의 자작극 의혹이 계속 일자 국정원 과거사건진실규명위원회는 지난해 8월 조사를 통해 ‘안기부 사전기획은 근거 없다’고 발표했다.
박상진 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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