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손학규 전 경기지사여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다."
범여권 인사들이 요즘 사석에서 종종 하는 말이다. 손 전 지사가 범여권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줄곧 1위를 지키고는 있지만 그에 걸맞은 비전과 본선 경쟁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는 실망의 표현이다. "범여권 대안 부재론에 안주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분위기는 범여권에 퍼지고 있는 '손 전 지사 위기론'으로 이어졌다. 3월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10%를 넘보던 지지율이 최근 4~6%로 내려 앉았고, 이달 초 캠프에 합류키로 했던 의원들도 거의 대부분 중립 지대로 발을 뺐다.
캠프에선 다른 대선주자들의 1등 때리기와 "광주 정신을 털고 가자"는 손 전 지사의 발언 등을 위기의 원인으로 거론한다. 하지만 범여권에 오래 몸담은 인사들은 "때 이른 자만과 전략 부재가 진짜 문제"라고 꼬집었다.
손 전 지사는 대통합을 주도하며 정치력을 검증받아야 할 중대 시기에 훌쩍 2차 민심대장정을 떠났다. 이는 "대통합 과실에만 관심 있다"는 비난을 초래했다. "패잔병" "탈영병" 등 다른 대선주자들의 공세에 너무 안이하게 대응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 경선후보들처럼 싸우기는 싫다"며 대처에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한 측근은 "설마 1등을 빼앗기랴 하는 분위기가 캠프에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에 14년 간 몸 담았다 탈당한 과거가 손 전 지사를 끊임 없이 괴롭히고 있지만 정작 손 전 지사는 이에 대해 사과하거나 명쾌하게 설명한 적이 없다. 범여권 핵심 지지층이 손 전 지사를 여전히 '우리 후보'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다.
이것이 '손 전 지사가 대선후보가 되면 한나라당 대 민주개혁세력 전선을 만들 수 없다'는 본선경쟁력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진다는 게 문제다.
캠프가 한나라당부터 재야 출신까지 워낙 다양한 인물들로 구성된 탓에 최근 내부 불협화음도 나오지만 정작 손 전 지사는 '손 놓고' 있다는 불만도 적잖이 나온다.
문제는 손 전 지사가 이번 위기를 잘 넘겨 9월 초 실시되는 통합민주신당 예비경선에서 압도적 1위를 하지 못할 경우 다른 대선주자들의 흔들기가 더 심해지고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손 전 지사는 16일 "한나라당에 있었던 전력이 본선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역공을 취하고 다른 대선주자들의 공세에도 적절히 대처하기로 하는 등 위기 관리에 나섰다. 한나라당 비주류에서 범여권 주류로 자리를 바꾼 손 전 지사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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