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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몸살' 한 지식인의 7년 귀농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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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몸살' 한 지식인의 7년 귀농일기

입력
2007.08.18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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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오 글ㆍ김보미 그림 / 강 발행ㆍ224쪽ㆍ1만원불혹을 넘어… 문득 흙냄새에 혹하게 되었다무른 손으로 경운기 핸들 잡았던 초보 농군어느새 거친 땅과 함께 생산적 몸살을 앓는다

농부 한승오(47)씨.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통신회사의 전화수리공, 출판사 사장 등 10년 넘게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불혹을 넘긴 2001년 2월 식솔을 이끌고 충남 홍성군 홍동면의 빈 농가를 ‘접수’했다.

그는 그곳에서 네 마지기(800평) 남짓한 논에 벼농사를 짓고 밭에는 고추 배추 참깨 홍화씨를 기르며 암탉 강아지들과 어울려 살아간다. 귀농하기 전에 1년 정도 목수일을 배우긴 했지만, 물집 하나 잡히지 않은 흰 손으로 무작정 농촌으로 내려간 그는 그곳 땅과 사람들과의 부대낌을 부지런히 글로 남겼다.

<몸살- 한승오의 농사일기> 는 2004년 <그래, 땅이 받아줍디까> 에 이어 3년 만에 펴낸 한씨의 두번째 농촌 에세이. 이태 간의 농촌생활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했는데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 그리고 거기 순응하는 농부의 마음을 따라 읽어가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앞서 나온 책에서는 보는 것마다 신기하고 만지는 것마다 가슴뛰는 초보 귀농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면 이 책은 농사가 일상이 돼가는, 때로 “슬슬 농사가 귀찮아지기도 하는”농부의 심경까지 확인할 수 있는 진솔함이 미덕이다.

그는 책 머리에 “해를 거듭하며 내 몸은 농사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련만, 몸살은 지금도 여전하다”고 썼다. 땅과 떨어져 살아가다가 땅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사람의 몸과 마음은 모두 심하게 앓는다.

이상한 것도 아닌 것이 그것은 ‘본래부터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가령 사람 손에 자라다가 땅에 옮겨 심겨진 모는 자리를 잡기 위해 며칠동안 잎이 누렇게 변하거나 시들시들해지는데 농촌에서는 이를 “모가 몸살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몸살을 공유하듯, 땅에서는 사람이나 식물이나 동물이 모두 마찬가지로 존귀한 존재라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따라서 콩을 심을 때 한 개는 땅 속의 벌레, 다른 한 개는 하늘의 새, 마지막 한 개를 농사짓는 사람의 몫으로 나누고 꼭 세 개씩을 심어야 한다는 ‘공생의 룰’을 지은이는 몸소 실천한다.

배추를 걷어야 할 10월이면 지은이는 농약 대신 핀셋을 들고 배추포기를 뒤집어가며 배추벌레 사냥에 나선다. 그리고 일기장에는‘나의 가을은 사냥의 계절’이라고 적는다.

유기농이야 요즘 흔하지만, 젊은 시절 사회변혁을 꿈꾸다가 농부로 탈바꿈한 지은이의 유기농에 대한 고집을 확인할 때면 고지식함보다는 때묻지 않은 순박함이 느껴진다.

그는 흙을 뒤엎고 쟁기질을 할 때 트랙터 대신 경운기를 쓴다. 30분이면 끝낼 일을 하루종일 해야 하지만, 또 트랙터는 ‘구질구질한 예전 모습을 싹 지워버리고 한번에 새 모습으로 바꾸기를 좋아하는 이 시대에 어울리는 기계’라고 생각되지만, 탈탈거리는 경운기에서 ‘거친 숨을 씩씩거리며 먼 옛날부터 논밭일을 해왔던 소’를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농약없이 배추농사를 짓지만 유기농 인증번호도 받지 않는다. “배추에는 내 손길과 땀방울 그리고 내 마음이 담겨있을 뿐이다. 번호없는 배추, 그게 바로 나의 배추다. 그 배추를 먹는 사람은 거기에 담긴 농사꾼, 나를 먹는거다”라고 밉지않은 고집을 부린다.

언제부턴가 봇물을 이루고 있는 지식인들의 귀농일기 중 자신있게 권할 만한 책이다. 일기 한 편 한 편마다 직접 붙인 시적인 제목, 파스텔 풍의 따스한 삽화, 서정적인 글이 어우려져 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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