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성주 지음 / 선인ㆍ299쪽ㆍ1만8,000원
1987년 대선 직전에 일어난 대한항공(KAL) 858기 사건은 북한 정권이 88서울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자행한 테러라는 국민인식이 굳어져 있다. 사건 직후부터 일부 의문이 제기되긴 했지만 특별히 눈길을 끌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사회 각 분야에서 본격화한 ‘진상 재규명’ 흐름을 타고 공식적 재조사 단계에까지 이르렀고, 음모론적 시각을 비롯한 다양한 의문이 제기됐으나 아직까지 처음에 굳어진 국민인식을 뒤흔들 만한 반증 자료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알 카에다의 소행이라는 미국의 공식적 견해와 정반대의 각도에서 ‘9ㆍ11 테러’를 조명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화씨 9/11’이 충격과 흥미를 자극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했던 것과 비슷하다.
어쩌면 이는 음모론의 근본적 한계에서 기인한다. 기존의 안이한 인식에 충격을 줄 수는 있을지언정, 수없이 던져진 물음표를 모아서 적당히 배열하는 것으로 새로운 진실을 드러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정부 발표에 대한 강한 의문을 바닥에 깔고는 있으나 어디까지나 우리가 알고 있는, 또는 믿고 있는 KAL858기 사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형성과정을 추적했을 뿐이다.
따라서 혹시라도 제목의 ‘진실’이나 ‘김현희 사건과 분단권력’이라는 부제에 이끌려 KAL858기 사건의, 새롭게 발견된 진상을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지은이는 사건 자체에 직접 돋보기를 들이대지는 않는다.
대신 사건 발생 직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다섯 단계로 구분하고, 각 단계별 이해관계자들의 복잡한 움직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논문 형식을 갖추기 위해 ‘분단권력’이라는 독자적 분석틀을 준비하기도 했으나 완결된 연구 성과라기보다는 앞으로의 연구를 위한 자료집 성격이 강하다. 이 점만으로도 지은이의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다만 정부 발표의 진실 여부가 쟁점이 될 수 없는 정보공개청구 등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진실성 의문’의 방증으로 거론, 법적 몰이해를 드러내는 등 옥의 티도 눈에 띈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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