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상반기에 발행 예정인 5만원, 10만원 짜리 새 지폐에 누구의 초상이 들어가는게 좋을까. 한국은행은 이미 후보 10명을 발표했고, 홈페이지를 통해 네티즌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지난 7일 문을 연 '고액권 초상인물 후보에 대한 의견 게시판'은 열띤 토론과 지지투표로 달아오르고 있다. 10명의 후보 이외에 광개토대왕과 단군이 많은 추천을 받고 있고, 몰표가 쏟아지면서 계속 순위가 바뀌고 있다. 한국은행은 21일까지 의견을 수렴한 후 9월 초에 2명을 결정하는데, 네티즌 투표는 참고용일 뿐이라고 못을 박고 있다.
● 10대에 순국한 '어린 열사'
후보 10명은 김구, 김정희, 신사임당, 안창호, 유관순, 장보고, 장영실, 정약용, 주시경, 한용운 등으로 통일신라 시대에서 근ㆍ현대까지의 인물들을 망라하고 있다. 화폐의 인물 후보로는 의외인 경우도 있으나, 독립운동가 학자 과학자 예술가 등으로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훌륭한 분들이다.
나는 그 중에서 제1후보로 유관순 열사를 추천하고 싶다. 그는 추천된 인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10대에 순국한 '어린 열사'인데, 그것이 그의 약점이고 또 강점이다. 유관순 열사를 화폐의 인물로 삼기에는 업적이나 비중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1904년 충남 병천에서 태어나 1920년 서울 서대문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우리나이로 17살, 이화여고보 2학년 학생이었으니 독립운동가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어린 나이였다.
그는 특별히 뛰어날 것 없는 보통학생이었다. 친구들과 항상 잘 어울렸고 기도시간에 장난치다가 벌을 받기도 하는 철부지 소녀였다. 그러나 3ㆍ1만세운동을 겪으며 그는 나라 잃은 백성으로서 특별한 자각을 하게 됐다.
서울의 학교들이 휴학하자 고향으로 내려간 그는 아우내 장터의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감옥에 갇혀서도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다가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나라를 향한 애끓는 사랑으로 자신의 목숨을 던졌다. 그의 부모님은 아우내 장터에서 일경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고, 오빠는 감옥에 갔고, 두 어린 동생은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다 단란했던 한 가족이 사라졌다.
그의 생은 짧았다. 그러나 그는 모든 한국인들의 가슴에 지지 않는 꽃으로 다시 피었다. 그는 3ㆍ1만세운동의 상징이고, 일제의 총칼에 맞선 어린 학생들의 상징이고, 무명옷을 입고 만세운동에 뛰어든 민초들의 상징이 되었다.
이 나라의 어린이들은 유관순 노래를 부르며 자란다. <3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옥 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다/ 푸른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라는 노래를 모르는 한국인이 있는가. 유관순은 영원한 민족의 누나이고 언니다.
10대인 그가 화폐의 초상인물이 된다는 것은 특히 청소년들에게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영웅과 롤 모델이 필요한 10대, 그들이 유관순 누나 유관순 언니의 초상이 들어간 화폐를 갖게 된다는 것은 자기 나이에 대한 긍정과 자부심, 사회에 대한 책임을 일깨우는 뜻 깊은 일이 될 것이다.
● 남성일색 얼굴 이제 그만
화폐 초상인물로 여성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숙제다. 기존의 1,000원 5,000원 1만원 권에 이어 새로 나올 5만원 10만원 권까지 초상 인물을 남자 일색으로 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횡포다.
더 이상 남자가 화폐를 독차지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 화폐 초상인물로 여성을 선택하는 것은 여성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고, 여성계의 압력에 굴복하는 것도 아니다.
세종대왕(1만원 권) 율곡 이이(5,000원권) 퇴계 이황(1,000원권) 등에 이어 유관순 열사를 화폐 초상인물로 선정한다면 그것은 신선한 파격이고 발상의 전환이 될 것이다.
영원한 민족의 누나이고 언니인 10대의 어린 열사, 오늘도 우리의 눈시울을 적시고 심장을 뛰게 하는 그녀…유관순보다 더 적합한 화폐 초상인물이 도대체 어디 있겠는가. 파격과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다. 제1후보로 먼저 유관순을 정하고 나서 다른 인물을 골라야 한다.
장명수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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