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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거꾸로 예술 바로 디자인] '디 워' 공방에서 남근상징의 콤플렉스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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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거꾸로 예술 바로 디자인] '디 워' 공방에서 남근상징의 콤플렉스 떠올리다

입력
2007.08.17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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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래 감독의 야심작 <디-워> 를 둘러싼 감정적 공방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어떤 이들에겐 이 공방이, 대통령 선거보다도, 탈레반 한인 납치 사건보다도 더 열띤 관심과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중대사인 것 같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를 비판하는 쪽이건 옹호하는 쪽이건 이상하리만치 감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양측을 곰곰이 살펴보니, 문제의 핵심은 팔루스(phallus) 즉, ‘남근 상징’이었다. 역시 전통적인 남근 상징인 용과 이무기는 시대를 초월하는 원시적 힘을 지닌 모양.

적잖은 이들은 <디-워> 라는 영화에 집단적 자존감을 걸었다. ‘영구’라는 우스개 캐릭터로 기억되는 심형래 감독의 무모한 도전이 결실을 맺어 '미국 내 1500개 상영관에서 동시 개봉될 예정'이라고 주장하는 ‘애국주의 마케팅’ 덕이었다. 암묵적 좌절감을 공유하는 듯 뵈는 이 관객 집단은 “이 영화는 망하면 안 된다”, “이 영화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이다”라는 식의 괴상한 논리와 정서를 퍼뜨리며, 심형래 감독을 응원하는 ‘붉은 악마’가 됐다.

문제는 이들의 기대감과 달리, 국내 영화 잡지와 평론가들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1999년 <용가리> 에 속은 기억을 어떤 바보가 잊으랴). 이러한 묘한 긴장 상태는 금방 깨져나갔다. 일부 언론에 의해 독립 영화감독 이(송)희일과 제작자 김(조)광수가 ‘평단’과 ‘충무로’의 대표로 불려나와 심형래 감독의 지지자들로부터 질타를 받는 신세가 된 것.

하지만, 애초에 그들은 자신들의 블로그에 영화에 대한 비판적인 감상을 남겼을 뿐이었다. 비교적 빈궁하게 사는 독립 영화감독과 제작자가 갑자기 ‘심형래라는 약자(?)를 얕보는 주류(?)’로 호출돼 세인들의 질타를 받다니 우습지 않나. 이 광경을 두고 테러 운운하는 것은 과장이겠지만, 보기 드문 하드코어 블랙 코미디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편, <디-워> 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반응도 정상적이진 않았다. 민망한 수준의 영화가 한국에서 한두 번 나온 것도 아닌데 너무 감정적이다. 그들의 논리가 어떻건 간에, 속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굉장히 쪽 팔린다”는 것이다. 대체 내가 만든 영화도 아닌데, 왜 내가 소위 ‘쪽팔린 감정’에 빠져야 하는가?

서구에 유래하는 시각적 상징들과 화면 편집의 문법에 더 익숙한 일부 ‘식자층’은 한국인의 남근 상징에 강하게 연루된 이 영화가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간주되고, 해외에 배급돼 널리 상영되는 일에 적잖은 수치심을 느끼는 것 같다. LA 도심에 이무기와 용이 등장하고, 백인 주인공이 전생에 한국인이었음이 밝혀지고, 막판에 장대한 아리랑이 울려 퍼지는 데에서 소위 ‘일반 관객’들―시각 상징들의 문해력이 뒤떨어지는―이 희열감을 느끼는 것과는 극히 상반된다.

하지만, 대립된 양측을 감정적으로 만드는 버튼은 동일하다. 한국인이 지닌 ‘남근 상징의 콤플렉스’가 그것이다. 언제든 누르기만하면 켜지는 신비한 그 버튼. 나는 영화보다는 그 버튼에 관심이 간다. 대체 그 콤플렉스는 언제 시작돼 어떻게 변형·발전하고 있는 것일까?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흐물흐물 바닥을 기던 국산 남근 상징이 미국 땅에서 솟구쳐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영화’에 자신의 처지를 투영하는 것일까?

마음 아픈 이야기지만, 언제나 문제의 문제를 파고들면 결국 하나의 문제가 남는다: 우리의 상징 남근이, 서구인 즉 백인들의 그것에 비해 보잘 것 없이 작다는 현실.

갑갑하고 한심스런 마음에 나는, <디-워> 를 둘러싼 모든 잡스러운 논란의 책임이, 대선 경쟁을 ‘남근 상징의 생생한 드라마’로 연출하지 못하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있다고 우기고 싶어진다. 그나저나, <디-워> 가 미국에서의 흥행에 참패할 경우, 많은 이들이 낙담할 것이다. 그때, 그 허한 가슴들은 과연 누가 달래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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