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무리한 욕심은 부리지 않겠다. 하나씩 진전을 이루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한 것은 정상회담을 이벤트성으로 이끌어가거나 새로운 선언을 도출하는 장으로 삼지 않겠다는 뜻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정상회담과 향후 남북 간의 바람직한 관계 설정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역대 광복절 경축사마다 일관되게 언급됐던 일본 지도층의 과거사 인식 비판 등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정상회담에서 작지만 중요한 실천 방안을 도출하겠다는 전략을 미리 제시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7ㆍ4 공동성명,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6ㆍ15 공동선언 등의 기존의 남북 합의문을 열거하면서 "이제는 이런 합의를 실천에 옮기는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언급했다. 커다란 밑그림은 그려져 있으니 보다 구체적인 것을 추구하겠다는 의미다.
노 대통령은 특히 이번 정상회담이 남북의 쌍방향 경제번영의 계기가 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금까지처럼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남측의 투자와 북측의 인적ㆍ물적 참여가 어우러지는 식의 합작 사업을 통해 남북이 '윈_윈'할 수 있는 상생구조형 경협 모델을 구축하자는 계획이다. 퍼주기식 경제 협력에 대한 비판을 고려한 것이다.
개성공단 사업에 이어 지난달 말부터 진행된 경공업_지하자원 개발 협력 사업 등이 이런 경제공동체 모델에 해당된다. 정부는 우선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의 인프라가 열악해 민간 차원의 경협 사업이 소규모 교역에 머물렀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 북측의 지하자원을 가져오더라도 교통 인프라가 열악해 엄청난 물류비용이 뒤따를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아울러 노 대통령은 남북 경제공동체 구축이 남북 간 긴장 고조를 자연히 해소시킬 수 있다는 소신도 밝혔다. 경제적 연관성이 높아지면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낮아져 북핵이나 평화 체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강조한 '정상회담 3가(可)3불(不)론'에 대해 노 대통령은 "무엇은 안 된다든가, 이것만은 꼭 받아내라는 부담을 지우기보다 큰 틀에서 미래를 위해 창조적 지혜를 모으길 당부한다"면서 "남북 발전에는 정파적 이해가 다를 일이 없다"고 강조했다.
"6자회담과 조화를 이루고 6자회담의 성공을 촉진하는 정상회담이 되도록 할 것이고, 6자회담이 성공적으로 진전되면 그 다음은 한반도의 평화 체제를 수립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노 대통령의 발언도 북핵 해결 없는 경협 지원에 반대하는 비판적 시각을 염두에 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국민의 기대 수준을 낮춰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비난을 막아 보려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정상회담에서 부담을 주지 말아 달라'고 말함으로써 남북 문제의 최우선 전제조건인 비핵화 문제를 회피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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