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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명저 50] <32> 오주석의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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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명저 50] <32> 오주석의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입력
2007.08.16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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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란 것이 본디 시중의 갑남을녀에게는 그 벽이 높고 두터운 것이지만, 한국 고미술만큼 단절과 괴리의 벽이 공고한 곳도 없을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알아도 단원 김홍도의 대표작은 아리송한 게 저간의 사정이다 보니, 무지가 무관심을 낳고 무관심이 무지를 강화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미술사학자 오주석(1956~2005). 그의 짧았던 생애는 대부분 이 장벽을 부수는 데 헌납됐다. 그가 쓴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솔 발행)은 박물관에 박제돼 있던 우리 옛 그림에 펄떡이는 날숨을 불어넣으며 한국 고미술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주역’ ‘시경’ 등 한학을 두루 섭렵한 실력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에서 큐레이터로 일했던 풍부한 경험은 쉽고 친절하면서도 깊고 해박한 설명으로 구구절절 풀려나왔다. 어렵고 고루하게만 보였던 우리 옛 그림들은 그의 인공호흡으로 소생했고, 박물관 벽을 넘어 대중의 안방에까지 스며들게 됐다.

2003년 출간돼 한국 전통미술 분야의 베스트셀러가 된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은 그가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행한 강연을 묶은 책이다. 2000년 무렵 본격적으로 시작한 강연활동은 생계를 꾸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편이기도 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격조 높은 우리 문화를 널리 알리겠다는 그의 자긍심의 발로이기도 했다.

“문화인, 예술가들이 아무리 피나는 노력을 해도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이란 결국 그것의 터전을 낳고 함께 즐기는 전체 국민의 안목만큼, 정확히 그 눈높이만큼 올라설 수 있다.”(저자 서문) 그의 강연이 박물관이나 문화원은 물론 공무원 및 교원 교육원, 삼성 LG 같은 대기업 연수원까지 대상과 장소를 차별하지 않았던 이유다.

명강사 오주석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 중앙공무원교육원이 어느날 ‘명강의 선집’을 내겠다며 속기사가 기록한 그의 강연록을 보내왔다. 저자의 교정을 거쳐 나온 공무원교육원의 비매품 책을 보강해 펴낸 것이 바로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이다.

그의 여러 저작들 중에서도 이 책이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 이유, 그것은 바로 우리 옛 그림의 대중화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강연록이라는 형식 때문이기도 하다. 유머와 능청이 곁들여진 구수한 단문의 입말체와 청중들의 웃음소리와 박수소리까지 괄호 안에 넣은 현장감이 강연장의 생생함을 고스란히 살려냈고, 독자는 마치 저자가 옆에 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따스한 온기를 책장에서 느낀다.

오주석 식의 이런 미술 대중화 작업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이미 1990년대 이주헌, 노성두 등이 서양미술에 관한 대중서적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진중권이 <미학 오디세이> 로 서구 미학이론을 대중적 눈높이로 풀어낸 바 있다. 하지만 이 바람은 한국 고미술에 가장 늦게 당도했다. 오주석 이후에야 한국미술에도 바야흐로 대중화의 훈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오주석이 제안하는 한국 고미술 감상법은 빽빽한 문자로 열거된 백과사전파 식의 지식이 아니었다. 혀에 착착 감기는 입말로 풀어내는, 소박하지만 절대적인 원칙들이었다. 바로 ‘옛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사람의 마음으로 즐기라’는 것. “그림 감상, 하나도 어려울 게 없습니다. 나비는 가볍게 활짝 날게 그리고, 새는 포로롱 하고 날아갈 듯 그리면 바로 그게 좋은 그림입니다.”(140쪽)

이 절대원칙 아래, 아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지당한 소원칙들이 제시된다. 첫째, 감상에 적당한 그림과의 거리는 그림 대각선 길이의 1~1.5배다. 둘째, 옛사람들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세로쓰기를 했으므로 그림을 볼 때도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시선을 흘려라. 셋째, 그림을 찬찬히, 구석구석 봐라.

오주석은 이런 조목조목 설명을 통해 한국의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어야 하는 것임을 일러준다. 그래서 그의 다른 책 제목 하나는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이다. 보는 것이 아니라 읽어야 하고, 읽어야 재미가 생기는 게 한국 그림이라는 것이다.

김홍도의 ‘씨름’만 해도 한국인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그림이지만, 그의 설명을 듣고 나면 한 번도 이 그림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팔베개 하고 비스듬히 누운 구경꾼을 통해 경기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는 시간의 경과를 읽어내고(오래 구경해 몸이 고단하기 때문에), 들배지기에 걸린 씨름꾼이 오른편으로 넘어질 것이라는 걸 오른쪽 구경꾼들이 놀라 몸을 뒤로 빼는 포즈를 통해 유추한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하나로 뭉뚱그려 원으로 만든 정선의 ‘금강전도(金剛全圖)’는 음양오행설의 원리에 맞춰 평화로운 이상향의 꿈을 琉?것이라고 설명하고, 김홍도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에서는 실바늘 같은 선을 수천번 반복해 그린 호랑이 터럭을 통해 수양의 경지에 이른 초인적 묘사력을 각인시킨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절로 실감되는 순간들이다.

쉽고 대중적인 글쓰기라고 하지만 오주석의 해석은 전문가들도 감탄을 금치 못할 만큼 독창적이고 깊이있는 것으로 정평이 났다. 미술사의 오류를 바로잡는 데도 혁혁한 공을 세웠는데, 조손(祖孫)인 이재와 이채의 초상화로 알려진 두 작품이 실은 10년의 시차를 두고 이채 한 사람을 그린 작품들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근무 시절 선배로 가까이 지냈던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은 “한국미술은 작품 외적 요소를 통한 해석이 일반적인 데 반해 오주석은 작품 자체에 주목해 자세하고 깊이있는 분석을 했다”며 “이 과정에서 그가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밝혀냈다는 점에도 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미술의 아름다움을 표나게 강조하는 이 책의 몇몇 대목은 아마도 세계시민주의자들의 감수성에 거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코스모폴리탄이라 할지라도 “우리 옛 그림이 이렇게 재미있고 아름다운 것이었다니…” 하고 무릎을 치는 일만은 피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생전의 오주석이 그의 독자들에게서 가장 듣고팠던 말일 것이다.

■ 미술사 '마이 웨이' 오주석은

단원 사랑 남달라 "내가 김홍도 이용했다" 울먹이기도

2005년 2월 7일자 신문에는 설 특집에 밀린 작은 부고 기사 하나가 부고란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49세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숨진 오주석의 부고였다. 그럴싸한 인터뷰로 언론의 조명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했던 소장 미술사학자였지만, 그의 죽음은 미술계와 그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가슴아픈 것이었다.

너무 젊은 나이가 그랬고, 갑작스레 닥친 병마에 스스로 곡기를 끊으면서 맞이한 최후가 그랬으며, 찬란하게 절정을 향해 치닫던 그의 저술작업 또한 그러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 출신인 오주석은 거대담론에 밀려 문화사나 풍속사에 대한 관심이 미미했던 1980년대, 미술사를 '마이 웨이'로 선택했다. 강연록에 따르면 그는 "고등학교 시절 학과를 결정할 때 국사학과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국사 공부를 해보면 19세기 대목에서 정말 엄청 열 받기" 때문에 한국사 대신 동양사를 선택했다는 것.

그러나 그는 결국 우리 역사로 돌아왔다. 그림을 통해서였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시절 기획한 '김홍도 특별전'이 크게 히트하면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단원 등 18세기 화가들의 자료 발굴과 독창적 해석을 통해 조선 후기 회화사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

1999년 출간된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은 김명국의 '달마상', 안견의 '몽유도원도', 윤두서의 '자화상' 등 11점의 옛 그림에 대한 번득이는 분석으로 우리 회화의 아름다움을 길어올렸다. 미완성 유고인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는 정선의 '금강전도'와 다산 정약용의 '매화쌍조도' 등 여섯 작품에 대한 독화기를 모았으며, 사후 출간된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는 폭 44㎝, 길이 8.56m에 달하는 조선 후기의 이 작품을 340여쪽의 분량에 풀어낸 방대한 연구서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도 본래 시리즈로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저자의 죽음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김홍도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 연구서 <단원 김홍도> 까지 냈던 오주석은 자신이 기획한 김홍도 특별전 후 뒷풀이 자리에서 "나는 김홍도를 이용해먹는다"며 울먹였다고 한다. 예술가와 그 작품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연구의 1차 질료였던 오주석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일화다.

오주석

▲ 약력

1965년 수원 출생

1979년 서울대 동양사학과 졸업

1982~83년 코리아헤럴드 문화부 기자

1987~88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1993년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석사

1994~96년 호암미술관 학예연구사

1996년~ 간송미술관 연구위원

1998~99년 중앙대 겸임교수

2001년~ 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2003년 연세대 영상대학원 겸임교수

2005년 2월5일 백혈병으로 별세

▲주요 저서

<단원 김홍도> ,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2> ,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 <우리문화의 황금기-진경시대> (공저), <단원절세보> (공저) 등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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