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에서 한미연구소 소장을 겸하고 있는 돈 오버도퍼 교수는 “북한 핵 문제가 정상회담의 주의제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이번 회담이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 4국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대학 연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오버도퍼 교수는 제2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환영한다면서도 그 성과를 전망하는 데 있어서는 내내 신중했다.
_제2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동기가 무엇이든지 나는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찬성한다. 남북한이 서로를 포용하려는 정책적 시도를 책임감 있게 추진한다면 많을수록 좋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직접 만나서 교류하는 것은 더욱 권장할만하다. 김 위원장은 북한에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다. 김 위원장이 좀 더 많은 외부세계의 영향력을 계속해서 받고 그 결과 외부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변화를 앞당길 수 있다.”
_북한이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에 정상회담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이유와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확실치 않은 게 너무 많다. 노 대통령이 임기 중에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원했던 것은 명백하다. 그가 취임 후 줄곧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해 왔다는 점은 사실 비밀이랄 것도 없었다. 그러나 최근 몇 달 동안의 상황 진전은 놀랄 만하다. 아마도 대부분의 한국인은 노 대통령 임기 내에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의 임기가 조금밖에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회담 성사 배경에 대한 내부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일반적인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추측컨대 한국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에 연계해 북한에 대규모 경제지원책을 제시했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김대중 대통령 정부 하에서 있었던 1차 남북 정상회담 때의 대북송금처럼 테이블 밑에서의 뒷거래 형식은 아닐 것이다. 이미 한국 정부는 광범위한 대북 지원책을 추진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에 나선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에서는 노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 문제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이를 부차적 의제로 다루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
“여러 여건으로 볼 때 유감스럽게도 노 대통령은 북한 핵 문제 해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아마도 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만나 핵 문제 언급은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가 핵 문제에 전력투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6자회담 및 한반도 비핵화가 정상회담의 주의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이 해낼 수 있는 한계가 분명하고 그 한계를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남북 정상이 다룰 가장 중심적이고 중요한 이슈는 남북관계를 어떻게 진전시키느냐가 될 것이다. 동북아가 처한 국제적 상황과 남북 공통의 안보 관심사가 논의될 수도 있다.”
_김 위원장이 핵 폐기와 관련된 중대한 양보나 제안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그럴 것 같지 않다. 북한은 일반적으로 핵 이슈는 북한과 미국 사이의 문제이며 최대한 양보한다고 해도 6자회담에서나 다룰 수 있는 문제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회담 결과를 속단할 수는 없겠지만 핵 문제와 관련해 이번 회담에서 깜짝 놀랄만한 일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고 있다.”
_남북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해서도 한미간 조율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남북 정상회담 합의를 발표 수시간 전에야 미국에 통보하는 등 사전 조율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보도가 있으나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통보 시기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고 봐야 한다. 미국으로서는 대북 문제에 관해 한국이 공동의 목표를 갖고 공조할 태세가 돼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한미가 공통의 입장을 마련해가는 과정에서는 많은 다양한 방법이 동원될 수 있다. 현재 한미가 어떤 채널을 통해 어떤 수위로 조율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미국이 편안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정상회담 성공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_미국은 남북관계가 6자회담 및 한반도 비핵화 진전에 보조를 맞춰주기를 바라는 것 같은데.
“지원을 거절하는 것이 압력으로 작용해 상대방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대북 정책에 있어서 ‘채찍과 당근’을 어떻게 적절히 활용하느냐는 어려운 문제다. 한국은 독자적인 정책을 갖고 있고 북한과 특수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남북간 醍?문제가 6자회담에 종속적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그렇지만 미 당국자들은 그 같은 기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현실적으로 원하는 수준으로까지 기대가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우려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남북 관계가 미국이 생각하는 전체적 방향과 맞지 않고 또 전혀 다른 시간표에 따라 움직여 간다면 그러한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남북 관계가 다른 부분과의 균형감과 조화 속에서 추진되기를 바라는 것 같고 그것은 필요한 일이다.”
_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에도 초점을 맞추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정상회담이 평화체제 문제를 다루는 남북미중 4개국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그것은 매우 가능성이 적을 것으로 생각된다. 무엇보다 중국이 4자 방식의 대화에 흥미를 갖고 있을 것 같지 않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 방식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도 확실치가 않다. 북한은 중국과 미국에 동일한 지렛대를 주는 그러한 구도에 거부감을 갖고 있어 한국만이 원한다고 해서 성사된다고 보기는 상당히 어렵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미국, 중국, 북한이 4개국 정상회담에 거부감을 갖고 있고 그렇지 않은 나라는 한국뿐이다. 그 정도의 최고위급 외교가 가능해 지려면 우선 아주 특별하고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양자 정상회담을 갖는 것도 각자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조율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나라의 최고 책임자가 서로 만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아주 가까운 나라끼리 양자 정상회담을 할 경우에도 많은 일들이 사전에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4개국 정상회담의 경우 관련국들 모두가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로 보기는 어렵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김일성 전 주석이나 김정일 위원장이 다자간 정상회담에 참석했던 전례도 없다. 언젠가는 한반도 평화협정의 체결이 가능하겠지만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현 단계에서 평화협정의 진전은 상상하기 어렵다. 실제로 평화협정논의가 진지하게 이뤄진다면 북핵 문제가 다시 핵심 의제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_정상회담 시기 결정에 노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국 정부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남북 정상회담 시기를 결정하는 데 노 대통령이 주도적 역할을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오히려 북한의 결정이 주요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노 대통령은 오래 전부터 북한에 정상회담을 요청해왔다. 따라서 왜 지금이냐는 시기 문제는 근본적으로 북한이 선택권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많은 추측이 나오고 있지만 북한이 왜 8월말을 선택했는지 정말 모르겠다. 남북 정상회담 개최 발표를 접하고 나도 크게 놀랐다.”
_남북 정상회담이 한국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정상회담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한국 정부가 그것을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하는지도 변수다. 그렇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첫번째 정상회담이 이뤄졌던 2000년에 비해서는 영향력이 크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두 번째 정상회담인 데다 한국인들이 7년 전과 달리 남북 정상회담을 한층 복잡하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 돈 오버도퍼 교수는 균형잡힌 시각 지닌 지한파
돈 오버도퍼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겸 한미연구소 소장은 남북, 한미, 북미 관계에 대한 견해를 제시할 때 상당히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의 국익에 치우치지 않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상대적으로 북한을 많이 이해하는 학자, 한미 관계에서도 한국의 독자성을 존중하는 지한파 전문가로서의 이미지를 심어 왔다. 북한 핵 등 한반도 문제를 천착해 오다가 보다 지속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 2006년 10월 존스홉킨스대에 한미연구소를 설립하고 초대 소장에 취임했다.
그는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기간에 서울에 머물면서 회담 결과에 대한 한국민들의 반응을 현장에서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예정이다. 오버도퍼 교수는 학자 이전에 언론인으로서도 화려한 명성을 쌓았다.
1953년부터 2년간 미 육군 중위로 한국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샤롯트옵저버지 기자로 출발, 68년부터 워싱턴포스트지로 옮겨 도쿄 특파원 등을 거치며 25년 동안 동북아시아 외교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기자로서의 현장감과 학자로서의 탐구심을 적절히 접목시킬 수 있었던 오버도퍼 교수는 '두 개의 코리아' '구정공습' ' 대반전-냉전에서 신시대로'등의 저서를 내기도 했다. 미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태爭?오버도퍼 교수는 올해 76세로 1952년 프린스턴대를 졸업했다. 제임스 베이커 전 미 국무장관과는 프린스턴대를 같은 해 졸업한 오랜 친구사이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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