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이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아마야구의 메카’ 동대문구장. 82년 역사만큼이나 산증인들도, 그들과 얽힌 사연들도 많다.
매표소 파수꾼 고경만(59), 조성욱(50)씨는 1975년부터 동대문구장에서 일하고 있다. 동대문구장에 젊음을 바친 고씨와 조씨로선 ‘마지막 고교대회’를 지켜보는 심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70~80년대만 해도 입장권을 사려는 팬들이 평화시장까지 300m가 넘게 줄이 이어졌어. 오죽하면 암표상들을 잡으려고 방망이 들고 쫓아다녔을까. 근데 이 곳이 없어진다고 하니 눈물이 나려고 해.”
1972년부터 구내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정광자(67ㆍ여)씨는 철거소식을 접하고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다. 정씨는 매점에서 일하며 6남매를 모두 대학에 보냈다. “까까머리 학생이 흰머리 중년이 돼서 다시 찾아올 때는 친동생보다 반가워요. 여기는 내 집보다 더 정든 곳인데….” 정씨는 감정에 북받친 듯 말끝을 흐렸다.
배수희(52) 한화 스카우트는 동대문구장 최연소 출입 ‘기네스북’ 감이다. 배 스카우트는 실업팀 농협의 응원단장이었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세살 때부터 동대문구장을 다녔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3월27일 MBC 유니폼을 입고 동대문구장에 섰을 때는 가슴이 뭉클하더라고요. 코 흘릴 때 인연 맺었던 곳인데 지금은 스카우트로 출입하고 있으니 동대문구장은 제 놀이터이자 직장인 셈이죠.”
‘출입경력’이 50년인데 에피소드가 왜 없을까. 그는 배문중 3학년이던 71년 한국과 일본의 제9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을 보기 위해 몰래 문틈으로 입장했다. “문틈으로 들어가느라 교복은 찢어졌지만 대신 야구를 봤으니 손해는 아니었죠.”
낭랑한 목소리로 “1번 타자 세컨드 베이스맨 ○○○, 2번 타자 라이트필더 ○○○”를 외치는 이경아(32) 장내 아나운서도 동대문의 마지막 증인 중 하나. “올해 들어 관중도 많이 늘고 고교야구 열기가 많이 회복된 것 같아요. 그런데 언제까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동대문구장이 없어진다고 하니 가슴 한구석이 왠지 허전해지네요.”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 양준호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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