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따리를 싸들고 정부가 새로 마련한 과천 정부청사의 통합브리핑룸으로 떠나는 기자들의 모습이 딱하다. 마치 전투에서 패하고 무장해제 당한 채 포로수용소로 향하는 패잔병들의 모습이다. 무기력하고 기백도 없어 보인다. 하기야 패잔병이라고 할 것도 없다.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알다시피 지금 정부와 언론은 '정보 전쟁' 중이다. 브리핑룸 통폐합, 중앙부처 사무실 출입제한, 철회하긴 했지만 엠바고(보도유예) 위반시 직접 제재 등 최근 정부가 쏟아낸 대언론 조치 이면에는 숨겨진 논법이 있다.
정부가 최선을 다해 국민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므로 언론은 정부의 정책을 홍보해야 하고, 뉴스 선택도 정부가 동의하는 선에서 하라는 것이다. 사실 이 말은 미 일리노이대 도리스 그라버 교수가 정리한 권위주의 시스템에서의 언론관인데 우리 상황에 기가막히게 적용된다.
정부의 조치는 관료와의 '직접 접촉'을 막아 원치 않는 보도를 최대한 줄이고, 언론은 정부가 던져 주는 양식(정례브리핑)을 맛있게 요리해 국민들에게 전달하면 된다는 의도를 담고있다.
엠바고를 깨면 직접 제재? 정보 통제의 화룡점정격이다. '이 재료는 지금 요리하지마'라고 정부가 명령하면 사족 달지 말고 따르라는 것이다. 물론 '정부가 최선'이라는 '지독한 독선'이 깔려있다.
사실 노무현 정부의 언론통제 조치는 새롭지 않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미국의 닉슨 행정부의 복사판이다. 언론에 적대감을 갖고 있던 닉슨은 취임하자마자 연방정부의 모든 정보채널을 감독하는, 우리로 치면 국정홍보처 같은 기구를 만들었다.
청와대브리핑과 마찬가지인 DM(direct mail)을 개발, 오피니언리더와 전문가 그룹에게 백악관 소식을 직접 전했고, 뉴스 모니터링을 강화해 문제보도가 나가면 반론권 행사를 하게 했다.
심지어 백악관 외부 수영장을 기자실로 개조해 기자들을 백악관 밖으로 몰아냈다. 닉슨이 언론을 "선출되지 않은 또다른 권력"으로 비판한 것도 똑같다.
그런 닉슨도 언론에 정면 도전을 받았다. 1971년 말 워싱턴포스트는 백악관의 백그라운드 브리핑(익명보도를 전제로 한 배경설명)을 전면 보이콧하겠다고 반기를 들었다. 당시 핸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중요 정보를 슬쩍 흘려 여론을 떠보는 '정치 도구'로 활용했다.
포스트는 이에 격렬히 저항하며, 뉴스원을 실명 보도하겠다고 선언했다. "어떤 정보를 어떻게 다룰지는 정부가 아니라 편집자가 결정하겠다"는 간단한 논리였다. 백악관은 브리핑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고, 언론계와 백악관의 대결로 치달았다. 그러나 결과는 언론의 참패였다.
경쟁지였던 뉴욕타임즈가 "남용만 막으면 될 뿐 중요 정보를 얻기 위해 제도 자체는 필요한 것"이라며 대정부 전쟁에 합류하지 않으면서 빛이 바랬기 때문이다.
정보를 움켜 쥔 정부에 '정보에 목마른' 언론이 맞서기란 이렇게 힘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싸움을 피한다면 언론의 미래는 암울하다. 권력은 항상 입에 맞는 언론을 원한다. 다음 정권에서는 더한 조치들이 나올 수도 있다.
지금 우리 언론은 너무 순종적이다. 고작 비판 기사 몇 개 쓰고 할 일을 다한 척 한다. 정부가 국민의 알권리를 막고, 부당한 언론통제를 시도한다면 각 언론과 기자들이 '죽치고 담합'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태희 정치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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