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은퇴한 한모(74) 할아버지. 서울시 공무원 생활과 건축설계 사업을 하며 벌어놓았던 돈을 야금야금 축 내다보니 어느새 바닥이 가까웠다. 미국에 살고 있는 자식들에게서 일부 생활비를 지원 받는 것도 늘 심적 부담이었다.
그런데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국내 최초로 주택연금(역모기지)이 판매된다는 신문 기사였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바로 주택금융공사 서울지사를 찾았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 아파트의 가격은 2억5,000만원.
사망할 때까지 매월 100만6,000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빠듯하기는 하지만 부부가 노후를 살아가는데 큰 지장은 없는 금액이더군요. 자식들에게 짐도 되기 싫었고, 굳이 집을 상속해 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노후에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매월 연금식으로 사망할 때까지 일정 금액을 받는 주택연금제도가 도입된 지 1개월여가 지났다. 지난달 12일 판매를 시작한 이후 13일까지 1개월 간 5,000여건의 상담이 이뤄졌고, 181명이 가입신청서를 냈다.
휴일을 빼면 하루 7~8명 꼴이다. 보증심사 등을 거쳐 실제 주택연금을 수령하기 시작한 이들도 55명이나 된다. 폭발적인 인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집에 대한 애착 때문에 활성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당초 우려는 사라졌다. "자식에게 집을 상속하기보다 편안한 노후가 우선이다"라는 인식이 조금씩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 특히 서울 강북의 2억5,400만원짜리 아파트를 담보로 매월 105만원의 연금을 받는 74세 노인'. 181명 가입 신청자들의 평균 프로필이다. 앞서 예를 든 한씨가 평균적인 주택연금 이용자에 근접한 셈이다.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 지역 거주자가 10명 중 7명을 넘었는데, 특히 서울 강북지역 거주자가 전체의 27%에 달했다. 주택연금 대상 주택이 6억원 이하로 한정돼 있어 집값이 비싼 강남구, 서초구는 단 한건의 신청 사례도 없는 반면, 노원구 등 주택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강북 및 외곽지역 거주자가 상당수였다.
5억~6억원의 고가주택(9.4%)을 담보로 내놓은 경우도 있었지만, 1억~3억원(48%)이 가장 많았고 1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주택도 17.7%나 됐다.
매월 받는 연금(월 지급액)은 평균 104만7,000원이었지만, 가입 연령과 주택 가격에 따라 편차가 컸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조모(91) 할머니는 3억8,000만원짜리 아파트를 담보로 현행 주택연금 제도상 최고액인 월 326만7,850원을 수령하게 된 반면, 부산 남구 용당동의 정모(82) 할아버지는 2,500만원짜리 단독주택을 담보로 매월 8만9,000원을 받는다.
최고령자인 광주 동구 산수동 지모(93) 할아버지는 6,500만원 짜리 단독주택을 담보로 월 63만원을 받는다. 그 동안 서울에 있는 아들이 매달 60만원씩 생활비를 보내줬는데, 미안한 마음에 돈을 제대로 쓰지도 못했다고 한다.
다행히 아들이 주택연금제도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려줬고, 부친의 연금 가입에도 흔쾌히 동의했다. 지씨는 "혼자 살아가는데 이 정도의 돈이면 충분합니다. 이렇게 좋은 제도를 만들어 준 정부에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며 흐뭇해 했다.
● 주택연금이란
고령자가 소유한 집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노후생활자금을 매달 연금처럼 지급 받는 대출. '역모기지론'이라고도 한다. 집은 갖고 있지만 노후소득이 부족한 고령자의 경우 주택연금을 통해 평생 생활 및 주거 안정을 보장 받을 수 있다.
만 65세 이상 1세대1주택(시가 6억원 이하) 소유자가 신청 대상이며, 주택 소유자와 배우자가 모두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사망 후 주택을 경매 처분해 남은 금액이 있으면 상속인에게 돌려주며, 부족분이 발생해도 청구권을 행사하지 않는다. 주택금융공사에서 보증서를 발급 받아 국민은행 등 6개 은행과 삼성화재 등 2개 보험사에서 대출을 받으면 된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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