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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원폭으로 숨진 조선의 황족 야스쿠니에 묻힌 사연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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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원폭으로 숨진 조선의 황족 야스쿠니에 묻힌 사연 추적

입력
2007.08.14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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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는 고종의 손자 이우(李ㆍ1912~1945)의 삶을 다룬 <조선황족 이우, 그는 왜 야스쿠니에 있는가?> 를 14일 밤 10시 1TV를 통해 방송한다.

고종의 손자이자 의친왕의 아들인 이우는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이 터지던 날 히로시마에서 사망했다. 그리고 11년 뒤 야스쿠니에 합사됐다. 조선 황실을 이어갈 재목으로 지목됐던 그가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야스쿠니에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의친왕은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로 망명을 준비할 정도로 항일 투쟁에 앞장섰다. 이에 격분한 일본은 조선 황실을 일본에 복속시키기 위해 황실 남자들을 대부분 일본으로 데려 간다. 의친왕의 둘째 아들인 이우도 10세 때 일본으로 가야 했다. 이후 31년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고 42년 중좌로 진급한다.

겉으로 보기엔 철저히 일본화된 황족의 모습. 그러나 그는 충성스러운 일본 군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우는 42년 중국 산시성(山西省)에 주둔하던 1군 사령부에 정보참모로 발령을 받는다.

이곳은 조선학도병이 포함된 중국 팔로군의 항일투쟁 근거지.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가택연금을 당했다는 사실과 급작스레 일본으로 전출된 사실 등을 미뤄볼 때, 그가 항일투쟁에 깊숙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우가 일본 장교로 복무했다는 점을 근거로 그의 야스쿠니 합사를 정당화하고 있지만, 그는 조선의 독립을 누구보다 열망했던 조선황실의 후계자였다. 제작진은 이우가 사망한 지 60년이 지나서야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조선황실의 마지막 비극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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