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은 어지간히 무던한 장기다. 워낙 튼튼하고 재생력이 강해서 웬만큼 아프지 않고서는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손댈 수 없을 정도일 경우가 많다. 간암(5년 생존율 14.4%)이 췌장암(7.6%), 폐암(12.8%) 다음으로 사망률이 높은 이유다.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한광협(간암클리닉 팀장) 교수는 “그러나 간암도 조기에 발견하면 간암 1기 생존율이 80%에 육박하고, 2기 생존율은 50%에 가까울 정도 치료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생존율은 3기에는 20%, 4기는 5%로 급격히 떨어진다. 조기 진단이 간암 극복의 관건이라는 소리다.
간암의 주요 증상은 간경변증과 비슷하다. 복통, 피로감, 복부 팽만감, 식욕부진 등이다. 복통은 흉골 안쪽이나 오른쪽 윗배에 발생하지만 때로는 오른쪽 간 부위에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오고, 드물게 오른쪽 어깨도 아플 수 있다. 쉽게 피로해지거나 몸무게가 줄어도 간 이상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간암 발병 위험군은 과도한 음주ㆍ흡연자, BㆍC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자, 알코올성 간질환이나 간경변 환자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가장 큰 원인은 간염 바이러스다. 한국인 간암 환자의 74.2%가 간염 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했다. 특히 B형 간염 감염자는 일반인보다 간암 발생 위험이 100배 높다.
간경변도 주요 원인이다. 환자의 60~90%가 간경변을 앓았다. 습관성 음주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발병 위험이 2배 이상 높다. 한광협 교수는 “술 자체가 지방간, 간염, 간경변 등을 거쳐 간암으로 악화된다”고 말했다.
이 밖에 땅콩과 옥수수, 피스타치오, 호두 등에 생기는 아스페르길루스라는 곰팡이에도 간암을 유발하는 아플라톡신이라는 독이 있지만 국내에는 이로 인한 발병사례는 거의 없다.
간암 치료는 암세포가 크지않은 초기에는 ‘간 절제술’이 가장 효과적이며 많이 쓰인다. 주로 복강경 시술을 통해 암세포를 떼내는 것으로 90%의 성공률을 자랑한다. 하지만 간 절제술을 받을 수 있는 환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간이 건강하고 암이 2~3㎝ 이하이며 중요한 혈관을 침범하지 않았고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 않은 상태여야 하기 때문이다.
초기 암이라도 간 상태가 나쁘면 ‘간 이식’이 추천된다. 5㎝ 이하의 암이 한 개이거나 3㎝ 이하의 암이 세 개 이하일 때 고려해볼 수 있다. 그러나 암의 크기가 너무 크거나 암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는 간 이식을 해도 대부분 재발하고 얼마 살지도 못한다. 비용도 5,000만~1억원 정도로 비싸다. 무엇보다 장기 제공자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비교적 조기에 암을 발견했지만 간 기능이 나쁘거나 고령이거나 다른 건강상 이유로 수술을 받기 어려울 때는 초음파 유도아래 주사침을 이용해 국소적으로 암을 죽이는 치료를 시도한다. 여기에는 알코올 주입술, 고주파 열치료, 방사선 치료, 그리고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한 홀미움_키토산 화합물 주입법(알코올 주입술에서 알코올대신 동위원소인 홀미움과 키토산 화합물을 사용, 치료효과를 개선한 것) 등이 있다.
문제는 간암 말기 즉 암이 혈관을 깊게 침범했거나 다른 장기로 퍼진 경우다. 믿을만한 치료법은 없다. 전신적 항암화학요법(항암치료)이 유일한데 안타깝게도 치료 효과는 20~30%로 다른 암에 비해 낮다. 다만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이 달 7일 세계 최초로 간암 치료제 품목 허가를 내 준 이노셀의 항암 면역세포치료제 ‘이뮨셀-엘씨’가 마지막 선택이 될 수는 있다. 암 환자의 말초혈액 20~50㎖로부터 추출한 림프구를 독자적인 기술을 활용해 특수 배양하고 면역기능을 극대화한 뒤 다시 체내에 주입해 암세포를 죽이는 치료제다. 일본에서 간암 환자 15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상 임상시험에서 40%의 유효율(완치, 부분적 치료)과 40%의 생존율을 기록한 이 치료제는 현재 국내에서도 임상이 진행되고 있어 말기 환자들에게 한가닥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공동기획 : 한국일보·국립암센터
후원 : 보건복지부·삼성생명·대한생명·SK텔레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 암 이것이 궁금해요/ Q 간암 예방법은?
A: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의학적인 관점에서 암 발생인구 중 1/3은 1차 예방이 가능하고, 1/3은 조기진단만 되면 완치가 가능하며, 나머지 1/3의 환자도 적절한 치료를 한다면 완화가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암 예방을 위한 생활습관은 고혈압이나 당뇨 등의 기타 만성질환을 예방하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보건복지부가 권고하는 국민 암예방 수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ㆍ담배를 피우지 말고, 남이 피우는 담배 연기도 피한다
ㆍ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먹고, 다채로운 식단으로 균형 있게 식사한다
ㆍ짠 음식, 탄 음식은 피한다
ㆍ술은 하루 두 잔 이내로만 마신다
ㆍ주 5회 이상, 하루 30분 이상, 땀이 날 정도로 걷거나 운동한다
ㆍ자신의 체격에 맞는 건강 체중을 유지한다
ㆍ예방접종 지침에 따라 B형 간염 예방접종을 받는다
ㆍ안전한 성생활을 즐긴다
ㆍ발암성 물질에 노출되지 않도록 작업장에서 안전보건수칙을 지킨다
ㆍ암 조기검진 지침에 따라 검진을 빠짐 없이 받는다
문의 국가암정보센터(1577-8899)
■ 암을 말한다/ 내가 보는 간암 <1>
우리 주위에 간암이 많은 것은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율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B형 간염은 모체로부터 감염된 경우가 대부분이며, 한 가족 내에서 부모나 형제 여러 명이 B형 간염 환자인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가족 중 한두 사람이 간경변증이나 간암으로 고생하는 것을 경험한 환자들은 간 질환에 대한 불안감이나 공포심이 매우 심하다.
오늘도 필자의 진료실에 많은 환자들이 다녀갔다. 그들 중 몇몇은 간암이 발견되어 몹시 당황하기도 하고 또 다른 몇몇 간암 환자들은 치료 후 재발이 없어 안도의 숨을 쉬기도 했다. B형 간염은 있었으나 건강하던 젊은이가 예기치 않게 심하게 진행된 간암이 발견되어 손을 쓸 사이도 없이 나빠지는 것을 지켜 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간암은 다른 암과는 달리 간 질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발생하지 않고 만성 간염, 간경변증 등 암이 발생하기 쉬운 기존 간 질환을 갖고 있는 경우에 발생한다. 간암을 성공적으로 치료한 경우에도 기존 간 질환이 있기 때문에 재발할 위험성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간암 환자의 80~90% 가량이 B형 혹은 C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한 간 질환을 앓고 있으며 이중 80% 이상이 간경변증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간암 치료는 얼마나 조기에 발견하는가와 함께 기존 간경변증의 상태가 얼마나 심한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간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서 만성 간 질환이 있는 환자는 증상이 없고, 외견상 건강하더라도 년 2회 이상의 복부초음파 또는 복부 CT를 시행하는 것이 좋다.
간암이 조기에 발견되어 성공적으로 치료가 되더라도 기존의 간경변증이 계속 악화한다면 환자의 경과는 좋지 않다. 간암의 가장 확실한 치료는 조기에 수술로 암종을 포함한 간의 일부를 제거하는 것이지만, 동반된 간경변증의 정도가 심하여 수술 후에 간 기능의 악화가 예상되는 경우는 수술적 절제가 불가능하다. 근래에는 영상진단 기술이 발달되어 이러한 경우 수술 이외에 알코올 또는 고주파로 종양 부위만을 제거하는 등 비교적 종양을 선택적으로 치료할 수 있게 되어 절제수술이 불가능한 환자도 그에 버금가는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 B형 간염에 의한 간경변증은 항바이러스 약제에 의해 호전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 간암에 동반된 간경변증을 호전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간암이 조기에 발견되어 치료가 잘되었으나 항바이러스 약제를 사용하여도 간경변증이 계속 악화되는 환자는 간이식을 하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
치료보다 중요한 것이 예방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간암의 예방은 만성 간질환의 예방에서 출발한다. B형 간염 예방접종과 음주 습관 개선 등의 건강관리가 중요하며, 만성 간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는 조기 진단을 위한 정기 검사를 충실히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신생아 B형 간염 백신이 시행된 지 15년이 지나고 있고, 최근 조사에 의하면 소아나 청소년 연령층에서 B형 간염 보유율이 1% 이내로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멀지 않은 미래에 간암 발병율이 현저히 감소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신호이다.
이창홍 건국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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