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의 나침반’ 미국 증시가 지난 주말 일단 급락세에서 벗어났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융시장이 정상 가동할 때까지 유동성(자금)을 최대한 공급하겠다”며 9ㆍ11 테러 이후 최대 규모의 긴급 자금을 방출하는 등 공세적인 방어에 나선 것이 월가의 얼어붙은 심리를 다소 안정시켰다.
그러나 서브 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바이러스에 새롭게 전염된 유럽은 유럽중앙은행(ECB)의 노력에도 불구, 증시 폭락세가 이어졌다. 경제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세계경기의 회복 흐름을 뒤바꾸는 최악의 상황으로 악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상당기간 세계 금융 시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서브프라임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간 우리나라 금융시장도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유럽, 일본 중앙은행 등의 국제 공조가 본격화하고 있는 것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미 FRB와 유럽 ECB 등 선진 7개국(G7) 중앙은행이 9, 10일 이틀간 시장에 쏟아 부은 돈만 250조원을 넘는다.
각국 중앙 은행들이 부랴부랴 ‘힘 모으기’에 나선 것은 세계 금융시장의 풍부한 유동성에도 불구, 단기 결제자금 시장에 돈이 흘러 나오지 않고 단기 금리도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
국제 공조가 세계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버팀목이 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미 증시는 10일 다우지수가 0.23% 하락하는 등 급락세가 진정됐지만, 유럽 증시는 급락세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유럽 증시의 하락폭을 보면 영국 3.5%, 프랑스 3.1%, 독일 1.5% 등으로 하락폭이 오히려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현재로선 서브프라임 파장의 범위와 대상을 가늠할 수 없는 것이 최대 악재로 지적되고 있다.
단순히 담보대출의 부실 뿐 아니라 이들 채권을 담보로 발행된 채권담보부증권(CLO)과 자산담보부증권(CDO)을 사들인 금융회사, 그리고 이들 채권을 사들인 헤지펀드(단기차익을 노린 투기펀드)에 빌려준 대출이 연쇄적으로 부실위험에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금리 인하 등 보다 적극적인 방어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서브프라임 악재에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여온 우리나라 금융시장도 신흥시장 자금 이탈 등의 추세와 맞물려 당분간 불안한 흐름을 보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13일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한국은행 간부들이 참석하는 금융정책협의회를 열어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하지만 국내 금융시장이 해외 시장의 ‘종속 변수’라는 점에서 뾰족한 묘수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흥모 한은 금융시장국장은 “우리나라는 여전히 유동성이 풍부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처럼 단기 결제시장이 경색되면 자금을 충분히 공급할 준비가 돼 있다”며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데는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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