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력이 떨어진 걸까, 단지 골이 깊은 걸까, 아니면 특유의 ‘냄비근성’이 되살아 난 걸까.
지난달 말 이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여파로 전세계 증시가 요동치는 가운데서도, 한국 증시는 유난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직접적 부실 영향이 거의 없다는 진단에도 불구하고, 한국 주식시장은 미국보다 더 요동을 치고 있다. 이젠 선진국 증시는 물론, 아시아 신흥국 증시의 ‘재채기’에도 우리 혼자 ‘독감’에 걸리는 모습이다.
12일 금융감독 당국에 따르면 우리나라 은행과 보험사 등 국내 금융회사들이 보유중인 미국 주택관련 채권(약 8억4,000만 달러) 가운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채권은 전체의 30%인 약 2억5,000만 달러 정도다.
금융계는 현재 미국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률(17~18%)을 감안할 때 국내 금융사들의 손실 규모를 4,000만 달러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400억원 정도의 손실이라면, 그렇게 호들갑 떨 수준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금융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주택저당채권(MBS) 등 신종 금융상품에 투자할 만큼 금융시장이 발달하지 않아 역설적이지만 이번 사태에 영향이 거의 없다”며 “채권 보유 규모가 워낙 작아 설사 100% 손실이 나더라도 감내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10일 증시 폭락의 원인이었던 프랑스 BNP파리바의 펀드 환매 연기와 관련해서도, 국내 관련사인 신한BNP파리바투신운용조차 “해당 펀드들에 투자하지 않았다”고 밝혔을 정도다.
하지만 국내 증시의 반응은 유별났다. 10일 종합주가지수(KOSPI)는 전날보다 4.20%(80.19포인트)나 떨어져 0.1~3.18% 수준의 하락률을 보인 일본, 중국, 홍콩, 대만 등 주변국들을 압도했다. 이 같은 현상은 전세계 증시가 동반 폭락했던 7월27일과 8월1일에도 마찬가지. 4% 안팎의 하락률을 보인 나라는 우리를 빼고 대만 정도가 유일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올들어 한국 증시가 주변국보다 많이 올랐기 때문에 작은 외부충격에도 주변국보다 훨씬 더 떨어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코스피는 올초 대비 40% 가까이 급등해 아시아 주변국 증시의 상승률을 압도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와 우리나라의 연결고리를 굳이 찾는다면, 한국증시와 같은 신흥시장에 대한 회피 움직임이다. 현대증권 서용원 리서치센터장은 “한국증시의 폭락은 신용경색에 따른 위험자산 회피심리가 선진국보다 신흥국 시장에 더 빨리 작용하기 때문이며 한국은 그 동안 상승폭이 컸던 만큼 충격이 큰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우증권 홍성국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증시의 변동폭이 큰 것은 올들어 급등한 우리증시의 상황을 외국인은 팔 때로, 국내 개인 및 기관은 살 때로 해석해 대규모 매매 물량이 충돌한 결과”라며 “이번주를 고비로 수급ㆍ심리적 악재가 최고조를 넘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신흥시장 중에서도 우리가 유독 낙폭이 큰 것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때문에 증시저변은 그저 물리적으로만 두터워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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