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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현 전 대사의 한중수교 비망록] <18> 수석대표끼리 머리 맞대고 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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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현 전 대사의 한중수교 비망록] <18> 수석대표끼리 머리 맞대고 담판

입력
2007.08.13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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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날 회담과 쉬둔신(徐敦信) 부부장 주최의 만찬까지 끝났으나 중국측은 ‘수교’라는 말은 입에 올리지도 않고 오로지 ‘대만문제’에 대한 우리측 입장 개진만을 압박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 1차 예비회담대책회의에서 청와대 김종휘 외교안보수석은 대만문제에 대한 우리의 기본 입장과 최초 입장만을 약간 밝히고 오라고 했다. 일종의 제약이었다.

회담 일정은 5월15일 하루 밖에 남지 않았는데 우리 대표단에게는 아직도 두세 가지 어렵고 큰 숙제가 남아 있었다.

첫째는 어떻게 하더라도 차기회담 일자를 약속받아 수교교섭의 불씨를 살려나가는 것이 이번 회담의 최소한의 핵심목표(Bottom Line)였지만 아직 차기회담 시기를 꺼낼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다. 둘째는 수교를 전제로 한 한중 정상회담방식이나 또는 정상방문을 실현하라는 청와대의 명령을 수행하는 일이었다. 특히 김종휘 수석은 정상회담을 여름 또는 가을 유엔총회 이전에 성사시키되 예비회담을 이번 한번으로 끝내고 곧바로 본회담으로 넘어간다는 생각을 갖고 대표단에게 본회담 일자와 장소까지 합의해 오도록 지시한 바 있다.

그나마 이상옥 장관이 대표단이 베이징으로 출발하기 전 날 밤 나에게 직접 전화로 ‘수교’의 본말이 전도되지 않도록 하고 김 수석 지시는 중국측 얘기를 들어보고 융통성 있게 결정하도록 재량권을 주었는데 이 장관의 이 같은 조치는 현지교섭 과정에서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나는 고심 끝에 장루이지에(張瑞杰) 대사에게 수석대표 간 단독으로 만날 것을 제의했다. 우리 두 사람은 회담 이틀째인 5월 15일 아침 9시부터 10시 25분까지 비공식 협의를 14루 1층 회의실에서 가졌다. 리빈(李濱) 조선처장(한국과장ㆍ2대 주한중국대사) 만이 통역으로 배석했다.

나는 추후 회담일정에 대한 중국측의 생각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장 대사는 한중 양측이 다년간 접촉을 갖지 못하여 상호이해가 부족하므로 점진적인 접촉을 통해 상대방의 입장을 완전히 요해함으로써 상호이해를 깊이하고 공통점을 찾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일정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첫 회담에서 일부 문제에 대해 의견교환으로 합의되는 사안은 통과시키고 불합의점은 다음 예비회담에서 의견을 교환하여 통과시키고, 이렇게 거듭해 나가되 정 안되면 본회담에서 해결하자고 덧붙였다.

나는 일단 김종휘 수석의 지시를 떠올리며 이에 대해 중국측의 생각이 어떤지 궁금했다. 그래서 이번 예비회담에서 서로 문제를 제기하고 다음에는 곧바로 본회담을 열어 본격 협상하자는 생각인데 귀측 의견은 어떤가 하고 물었다. 장 대사는 모든 문제를 예비회담에서 투철하게 논의하여 난관을 없애고 모든 오물을 정리하고 본회담에서는 기쁜 얘기만 나눌 수 있게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예비회담이 앞으로 2~3차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침내 장 대사는 제2차 예비회담을 베이징에서 5월 25, 26일에 갖자고 제안까지 했다. 나는 중국측 의견을 돌아가 본회담 수석대표와 외무장관에게 보고하고 그 결과를 추후 통보하겠다고 밝히고, 그 경우 제 3차 예비회담은 서울에서 갖자고 제안했다. 장 대사는 5월 제2차 예비회담의 결과를 봐서 3차 예비회담은 서울서 가져도 좋다고 말했다.

나는 장 대사의 얘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우리 외무부와 중국외교부가 수교교섭에 관한 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차기회담에 대한 중국측의 입장을 확인한 나는 남은 한 가지 문제로 화제를 옮겼다. 바로 노태우 대통령의 방중과 양국 정상회담의 실현이었다.

나는 일단 대만과 한국의 특수한 관계를 이 문제에 대한 지렛대로 활용했다. 대만과의 단교는 국민 여론상 정치적 부담이 크고 현실적으로도 대만과 깊이 얽힌 관계 때문에 여론의 강한 반대가 상존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실제로도 당시 많은 국민의 정서는 그러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대통령만이 내릴 수 있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므로 한중수교는 양국 정상회담 방식을 통한 발표만이 가장 상징적이고 가시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정상회담 또는 정상방문을 제안했다.

이에 장 대사는 대만문제에 대한 원칙을 한국측에서 답변 받지 못한 단계에서는 이 문제에 답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앞으로 협상할 수 있다는 것이 초보적 생각이라고 일단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마지막으로 장 대사는 양국이 이번 회담을 잘 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하였다.

한중문화청소년협회(미래숲)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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