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이 12일 여성 인질 2명 석방을 약속함에 따라 인질 협상에 청신호가 켜졌다. 탈레반이 그동안 고수한 ‘탈레반 수감자 석방’ 조건 없이 인질이 석방됨에 따라 교착 상태였던 협상에 숨통이 트인 셈이다.
하지만 여성 인질 2명 선(先) 석방 방침은 탈레반측이 인질 문제를 조기에 매듭지으려는 의도라기보다 인질 처리를 둘러싼 국제 사회의 여론전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다목적용 노림수라는 분석이 우세해 인질 전원 석방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의 인질 2명 석방 약속은 10일 시작한 한국 정부와 탈레반의 대면 접촉이 첫 성과를 거뒀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진전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협상에 미온적이었던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대신해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탈레반과 한국 정부 사이에 신뢰가 상당히 구축됐다고 볼 수 있다.
실제 탈레반도 한국과의 대면 접촉 이후 “협상에 만족한다” “협상 결과를 낙관한다” 는 등 긍정적 발언을 쏟아냈다. 탈레반이 그동안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대해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던 점을 감안하면 한국 정부의 성의있는 모습이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탈레반측의 “협상 만족과 낙관” 발언들은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그동안 협상의 숨통을 조였던‘탈레반 수감자 석방’ 문제에서 진전 기미를 전혀 보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탈레반측은 여전히 수감자 석방을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고 아프간 정부는 석방 불가를 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탈레반측의 유화적 제스처들이 인질 억류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돌리면서 아프간 정부와 한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다목적용 카드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탈레반이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데 반해 아프간 정부가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심어주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탈레반이 수감자 석방 요구를 바꾸지 않는다면 향후 협상은 더욱 험난할 수밖에 없다. 여성 인질을 추가 석방하면서 다시 여론전을 펼 수 있지만 남성 인질 5명은 끝까지 끌고 갈 가능성이 높다. 탈레반으로서는 ‘우리로선 할만큼 했다’는 것을 과시하면서, 아프간과 한국 정부를 더욱 강하게 몰아칠 빌미가 되는 것이다.
파키스탄 정책연구소(IPS)의 이르판 샤흐자드 책임연구원도 “탈레반이 동료 수감자 석방요구를 철회할 가능성이 없어 향후 협상이 더 어렵게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 정부와의 협상이 결렬될 경우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울러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여성 인질의 장기 억류에 대한 이슬람 사회의 비난 여론을 돌릴 필요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눈여겨볼 것은 탈레반이 이번 인질 사태를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받는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의 대면 협상에서 유엔을 통한 안전 보장을 요구한 데 이어 2001년 탈레반 정권 붕괴 후 첫 공개 기자회견을 가지는 등 실추됐던 정치적 단체로서의 성격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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