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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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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가짜

입력
2007.08.1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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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10여 년 전 크게 히트한 신신애의 노래 가사가 요즘 새삼 떠오른다. 교육부총리와 고려대 총장이 표절 문제로 낙마하더니 올해 들어서는 연일 가짜 학위 문제가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다.

교수들이 학력 위조 사실이 밝혀져 퇴출 당하는가 하면 영어강사, 만화가, 영화감독까지 덩달아 가짜 이력을 고백하고 나섰다. 경찰이 학원강사들의 학력 위조를 수사 중이고, 검찰은 '신뢰 인프라 교란사범'을 집중 단속한다니 가짜가 판치는 실상이 어디까지 드러날지 궁금하다.

■근래에만 해도 2000년 10월 구석기 유적 발굴로 유명한 후지무라 신이치라는 일본 학자가 유적지에 석기를 파묻는 모습이 몰래카메라에 잡혀 세상이 경악했다. 일본 열도에 인간이 거주한 역사를 70만 년 전으로까지 끌어올린 그의 발굴 성과는 대부분 날조로 밝혀졌다.

1983년 4월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테른〉은 아돌프 히틀러의 일기 원본을 입수했다고 발표했지만 두 달도 못 가 가짜임이 드러났다. 슈테른이 약 40억 원이나 주고 사들인 일기는 히틀러 그림 전문 위조범이 500여 권의 서적과 정기간행물을 섭렵해 쓴 것이었다.

■그러나 위조에 대해 느끼는 충격의 정도는 사실 보기 나름이다. 이집트의 벽화나 비문에서부터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 중국의 고대 사서에 이르기까지 시뻘건 거짓말은 한둘이 아니다.

진 전쟁을 이겼다고도 하고, 동네 골목대장을 온 세상의 지배자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종교나 철학에서도 위조는 맹위를 떨친다. 유가에서 경전으로 떠받드는 〈서경(書經)〉의 경우 17세기에 오면 상당 부분이 후대인의 위작으로 판명이 난다.

특히 유가의 핵심 가르침 16자(人心惟危ㆍ인심유위 道心惟微ㆍ도심유미 惟精惟一ㆍ유정유일 允執厥中ㆍ윤집궐중)조차 후대인이 여기서 빌리고 저기서 끌어와 끼워 넣은 가짜로 드러났다.

■ "사람의 욕심은 위태롭고, 진리를 향하는 마음은 가냘프니, 오직 집중하여, 진실로 그 중용을 잡아야 할 것이다"라고 한 그 유명한 캐치프레이즈가 가짜였다니…. 작금의 사태는 꼴불견이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가 거짓의 꺼풀을 하나씩 벗겨내는 과정이라고 본다.

그 동안 워낙 정신없이 살다 보니 이런 문제에까지 눈이 미치지 않던 것이 이제 살기가 좀 나아지려니까 수면 위로 드러난 듯하다. 좋게 해석하면 한국 사회가 정상으로 가는 징표다. 12월 대선에서야말로 누가 언행이 일치하는 진짜이고 누가 '짜가'인지를 잘 가려야겠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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