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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폭력의 철학' 정당한 분노의 표출, 그 폭력이 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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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폭력의 철학' 정당한 분노의 표출, 그 폭력이 악인가?

입력
2007.08.1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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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이 다카지 지음ㆍ김은주 옮김 / 산눈출판사ㆍ248쪽ㆍ1만2,000원

“폭력에 대한 폭력을 억누른다고 하는 것은 폭력의 공범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순수함과 폭력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종류의 폭력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육체를 부여받은 존재인 우리에게 폭력은 숙명이다.”

프랑스 현상학자 메를로 퐁티의 <휴머니즘과 테러> 속 한 구절을 인용하며 끝을 맺는 이 책은 ‘불온하게’ 묻는다. 폭력은 모두 악인가? 모든 폭력은 그저 야만일 뿐인가?

그렇다고 굳게 믿는 평화 지상주의자라면 이 책을 읽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폭력에도 ‘급(級)’이 있고, 그러므로 구분짓기가 필요하다는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옹호해야 할 어떤 폭력’이 있음을 인정하라고 집요하게 독자를 설득하기 때문이다.

오사카시립대 사회학부 준교수인 저자는 폭력을 거부하는 것이 반드시 폭력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폭력은 안 된다’는 막연히 ‘올바른’ 도덕이야말로 도리어 폭력에 가해지는 더 큰 폭력을 용인하며, 폭력의 다양한 층위에 대한 무감각을 비대화시키는 동력이라는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주의에서 시작해 마틴 루터 킹, 맬컴 엑스, 프란츠 파농, 한나 아렌트, 위르겐 하버마스, 프리드리히 니체, 미셸 푸코에 이르는 다양한 폭력의 담론들을 비교, 분석하는 이 책은 하나의 개념으로 포괄될 수 없는 폭력 내부에 철학적 구분선을 긋기 위해 ‘반폭력’(anti-violence)이라는 개념을 주창한다.

일체의 폭력을 거부하는 비폭력(non-violence)은 물론 ‘폭력에는 폭력을’을 구호로 내세우는 대항폭력(counter-violence)과도 구별되는 반폭력은 폭력을 구조화하는 제도 차제를 해체하려는 폭력이다.

여기서 반폭력을 다른 폭력들과 구분하는 기준은 적대성과 주권. 적대성이란 자기자신이나 타자를 향해 분출되는 증오와는 다른, 구조에 대한 정당한 분노를 뜻하며, 주권은 폭력 수단을 독점하고 그 폭력을 누구에게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리를 일컫는다. 저자는 폭력이 반폭력이 되기 위해선 올바른 적대성을 갖되, 주권의 쟁취를 목적으로 하지 않아야만 한다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반폭력의 구체적인 예로 무엇을 들 수 있을까. 저자는 북미자유협정에 저항해 무장봉기한 멕시코 게릴라 집단,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을 첫 손에 추켜세운다. 그들이야말로 총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총을 든 자들이기 때문이다.

적대성에 기반한 폭력은 억압받는 자를 자기혐오로부터 구원한다. 폭력은 행위뿐 아니라 언어와 이미지의 영역에서도 작동하기 때문에 폭력의 전개는 자기치유의 과정과 고스란히 겹치기도 한다.

프란츠 파농의 말처럼 “구체적인 폭력행사 전에 적을 확인하고 어디에 균열이 생겼는지 정확하게 인식하여 전투적인 자세를 취함으로써 비로소 뿌리 깊은 의존 콤플렉스로부터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시 한번 묻는다. “이래도 당신은 폭력은 모조리 나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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