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황 지음ㆍ박숙경 옮김 / 창비 발행ㆍ144쪽ㆍ1만원
동물에겐 국경이 없다. 물리적인 국경은 물론 감정, 혹은 이념의 그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먹이를 찾아 휴전선을 넘는다고 붙잡힐 노루가 있겠나, 추위를 피해 월경하는 기러기 무리에게 비자를 요구하겠나. ‘사쿠라’(왕벚나무) 라는 어쩌면 한국인에게 가장 쉽게 반일감정을 일으키는 이름을 가진 중년의 암컷 코끼리에게도 국경은 없었다.
2003년 5월 사쿠라는 일본의 타까라즈까 패밀리랜드에서 과천의 서울대공원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타카라즈까 패밀리랜드가 폐쇄됨에 따라 한국으로 이사한 사쿠라가 2년여 만에 국경과 반일감정의 벽을 넘어 서울대공원의 인기 동물 3위에 올라서기까지의 이야기가 이 책의 줄거리다.
재일동포 3세인 작가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간 코끼리 사쿠라에 대한 얘기를 전해 듣고 취재를 위해 한달음에 서울대공원으로 달려간다. 태국에서 태어나 7개월 만에 일본으로 보내진 후 또다시 이국땅인 한국으로 이사와서 삶을 이어가는 코끼리. 여러 개의 고향을 가진 코끼리의 처지가 재일동포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의 심금을 울린 것이다.
작가가 만난 사쿠라는 차별과 편견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인 서울대공원에서 당당한 가족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름 때문에 한국 국민에게 미움을 받지 않을까 했던 작가의 선입견도 불필요한 우려였을 뿐이다. 한 마리의 코끼리가 국경을 넘어다니며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준다.
취재를 준비하던 중 작가는 1411년 태종 3년에 인도네시아에서 일본국왕에게 선물로 전해졌다가 다시 한국으로 보내진 코끼리의 이야기를 접한다. 관리를 죽인 탓에 귀양살이를 전전하다 한국에서 죽어간 첫 ‘한일 교류’ 코끼리를 시작으로 작가는 한국과 일본을 오간 코끼리들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쿠라를 포함한 여러 ‘일본출신’ 코끼리들의 등장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이 책은 일본아동문학자협회 창립 60주년 기념으로 2006년 새롭게 제정된 ‘어린이를 위한 감동 논픽션 대상’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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