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링 킨더슬리(DK) 하면 지식 정보책을 만드는 출판 편집자들에게 설렘을 안겨 주는 이름이다. 해부도처럼 정교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도해로 지식 정보를 보여주는 책들이 우리 눈을 즐겁게, 때로는 시리게 만들었다.
2002년 가을에 그곳을 방문했다. 미리 받아든 주소를 들고 정확하게 찾아갔건만 주소지의 건물을 아무리 살펴도 DK 이름이 들어간 간판이나 로고를 볼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건물은 펭귄출판사였고, DK는 그 건물의 세 개 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DK가 펭귄출판사에 흡수ㆍ합병된 뒤 자체 브랜드로 출판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때 만난 DK 편집자에게 들었다.
펭귄이 워낙 거대한 출판사이기 때문에 DK가 그 산하로 들어갔다고 해도 규모는 엄청났다. 내가 방문했던 지도책(아틀라스) 제작부서만 해도 수십 명의 전속 지도디자이너(카터그래퍼)가 그보다 훨씬 많은 프리랜서 디자이너들과 협력하면서 세계의 역사와 지리를 담은 대형 지도책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게다가 자체 예산을 들여 지도제작 하드웨어를 만들어 놓았는데, 여기에다 새로운 지리정보데이터를 입력하기만 하면 알아서 입체지도로도 보여주고 뒤집어서도 보여주는 것이 놀라웠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DK가 펭귄출판사의 ‘임프린트’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임프린트는 요즘 우리 출판계에서 가장 유행하는 말 가운데 하나이다. 대체로 전문적인 콘텐츠를 갖춘 기획편집자들이 팀을 이루어 독자적으로 전문적인 책을 기획ㆍ편집하고, 본사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는 시스템인 것 같다.
출판도 자본주의 환경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경쟁과 독점의 원리에 따라 큰 자본을 가진 출판사 밑에 수많은 임프린트들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수많은 임프린트들이 DK처럼 농익은 전문성을 가지고 자기만의 확실한 콘텐츠들을 생산하고 있는지, 그런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출판 자본의 확장 논리에 따라 급조되는 임프린트가 아닌, 오랜 세월 자기만의 노하우와 콘텐츠를 쌓아온 출판장이들이 각자의 전문성을 가지고 헤쳐모이는 임프린트가 있다면, 그런 곳이라면 DK에서 받았던 신선한 충격을 기대할 수 있을 텐데….
강응천ㆍ출판기획 문사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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