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바이코프ㆍ김소라 옮김 / 아모르 문디 발행ㆍ280쪽ㆍ9,500원
지금은 동물원에 가면 쉽게 볼 수 있지만, 호랑이는 오랫동안 우리 민중들에게 영물(靈物)로 받들어져온 동물이다. 반면 서양에서는 동양만큼 호랑이가 상징성이 있는 동물은 아니기 때문에 어린시절 서양작가가 호랑이를, 그것도 조선호랑이를 소재로 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여겼던 기억이 새롭다.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위대한 왕> 의 완역본이 선보였다. 1936년 처음 발표된 소설로 광활한 만주의 침엽수림을 지배하는 조선 호랑이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어린이용 문고판이나 만화 등으로 여러차례 선보였지만 완역은 이번이 처음. 러시아어판을 옮긴 것이 아니라 프랑스어판(1938년)을 텍스트로 삼은 점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지명이나 묘사, 사건들을 많이 생략해버린 기존 번역서의 약점을 극복하고 원본의 아우라를 잘 살려주고 있다. 위대한>
주인공인 조선호랑이는 “단 한번 성난 눈길을 던지기만 해도 모든 작은 육식동물들이 겁을 먹고 맹종하는 왕”이다. 탄생, 사냥, 숲의 지배자로의 성장, 숙적인 인간과의 조우, 비극적인 최후 등 왕의 일생은 실제로 30여년간 만주의 자연을 치밀하게 관찰했던 작가의 군더더기 없는 문장에 의해 생명력을 얻는다.“넓고 반듯한 이마에는 ‘왕(王)’이라는 글자의 윤곽이 선명하고, 허공을 가로지르듯 유연하고 가볍게 위로 튀어오르는 모습은 차라리 새의 비상에 가깝다”“왕의 힘과 날렵함, 뛰어난 솜씨, 아름다움을 따라올 동물은 어디에도 없었다”“왕의 강인한 모습 전체에서 타고난 엄청난 힘과 꺾이지 않는 의지가 느껴졌다” 존엄한 왕자(王者)의 삶이라는 소재와 만주라는 공간적 배경이 잘 조화돼 남성적인 힘이 느껴진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러시아가 동청철도(하얼빈철도) 부설권을 획득해 만주개발에 뛰어들고 일본역시 한반도를 거점으로 만주진출을 꾀하던 시기. 이런 저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사냥꾼에 의한 왕의 죽음을 식민주의자의 피식민자에 대한 침탈로 읽거나, 문명에 의한 자연파괴라는 은유로 읽어내는 시도도 흥미롭겠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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