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그르니에 / 민음사"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다…"
계절을 느낄 때 생각나는 책이 있다. 그럴 때 그 책은, 아끼듯 책장을 넘기던 하루 중의 어느 시간- 해질 무렵이거나 한밤중 혹은 미명의 기억, 그 계절의 냄새, 그때 듣던 음악 같은 것과 함께 떠오른다. 프랑스의 작가·철학자인 장 그르니에(1898~1971)의 산문집 <섬> 은 여름이면 생각나는 그런 책이다. 그는 '섬'이라고 발음할 때의 그 여운과 함께 "섬으로 떠나보라"고, "웅크려 있지 말고 떠나가서 너 자신을 다시 찾아보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섬>
"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다.” 장 그르니에는 <섬> 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섬> 은 젊음을 위한, 혹은 지나가버린 젊음의 추억을 위한 책이다. 젊음의 막막함, 몽상, 상처를 장 그르니에는 동터 오르는 여명의 빛 같은, 계시와 같은 문장으로 어루만진다. 섬> 섬>
알제리에서 장 그르니에를 스승으로 만난 뒤 글을 쓸 작심을 했다는 카뮈는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 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고 <섬> 에 부친 서문에서 썼다. 섬> 섬>
장 그르니에의 다른 구절. "혼자서,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도착하는 공상을 나는 몇 번씩이나 해보았다.그리하여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아보았으면 싶었다.그러나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비밀'을 고이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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