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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이원택 얼음조각가 "21년째 얼음조각을 요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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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이원택 얼음조각가 "21년째 얼음조각을 요리합니다"

입력
2007.08.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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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크리스탈처럼 투명해 묘한 빛을 내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스스로 녹아 없어지며 예술로 승화되는 그는 마치 어머니와 같다.’

한 남자가 21년째 푹 빠져있는 ‘그’는 다름 아닌 얼음 조각이다. 얼음조각가 이원택(46)씨는 “돌이나 나무가 아닌 얼음을 깎아 만드는 조각품은 짧은 시간에 많은 작품을 만들 수 있어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며 얼음조각 예찬론을 폈다.

‘아이스 카버’ 즉 얼음 조각가로 활동하면서 지난해 10월부터 얼음 조각 체험관 ‘아이스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이씨를 찾아간 것은 매우 단순한 발상 때문이었다. 분명 여름을 시원하게 나는 사람일 것이라는 무지의 소치. 인터뷰하는 동안 만큼은 한여름 무더위 걱정은 떨쳐버릴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기대를 저버리는 그의 항변.

“어휴, 말도 마세요. 워낙 강도가 센 육체노동에 가까운 일이어서 작품 하나 만들고 나면 속옷까지 땀으로 흠뻑 젖는 게 예사인 걸요. 시원하기는커녕 장화를 신고 일하니 무좀에 걸리기 십상이고. 겨울엔 또 야외에서 작업하다 보면 코나 귀가 얼얼해지죠.”

8m지름의 이글루를 하나 만드는데 24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겨울에 각종 축제가 열리는 강원도 일대에서 영하 20도 기온에서 하루 종일 작업한다는 말을 듣고 보니 생각처럼 시원하게 일할 수 있는 직업만도 아닌 듯했다. 더욱이 영하 5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거대 냉동고 같은 얼음 체험관의 문을 열기 전까지 아이스갤러리는 그저 다른 조각가의 작업장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86서울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이 열릴 무렵 꿈 많은 20대의 그는 호텔 조리사였다. 지금이나 그 때나 호텔 조리사는 유망한 직업. 7개월 여의 조리사 생활을 접고 그가 얼음조각가로 나선 것은 당시 수없이 열리던 연회를 보면서 얼음조각의 수요가 무궁무진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었다.

“행사는 많지, 총주방장 지시를 기다릴 필요도 없지. 그저 내 아이디어만으로 하루 만에 뚝딱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 있다는 게 참 좋았죠. 내 고집, 내 기술을 담을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그는 조리사에서 아이스 카버로 직업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던 호텔 직원들과 함께 얼음조각 전문업체를 차렸다. 하지만 호텔에서 얼음조각이 많이 필요했던 건 호텔의 연회 스케줄이 잘 짜여져 있는 덕분이었다. 그 수많은 파티를 보면서 호텔의 월급쟁이로 남느니 전문업체를 차리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했던 그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97년 외환위기 직후에는 포장마차를 겸업하며 얼음조각 사업을 유지할 정도로 많이 힘들었어요. 당시만 해도 과소비의 상징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얼음 조각이었거든요. 게다가 전국적으로 250명도 안 되는 얼음 조각가 중 실력 있는 경력자를 다시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 어떻게 해서든 직원들을 내보내지 말고 계속 끌고 가야 했거든요.” 그렇게 직원들을 끌어안은 까닭에 사업 초기 경리 업무를 맡았던 여직원이 지금은 조각가들을 통솔하는 팀장의 자리에 올랐다.

벌써 21년. 20대에 얼음조각 일을 시작한 그는 “왜 전망 있는 조리사 일을 그만두고 듣도 보도 못한 아이스 카버를 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지 아내의 반대가 무척 심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 때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지금은 아내가 가끔 나와서 도와주기도 할 정도로 제 일을 많이 인정해 줍니다. 다행히 지금은 인터넷이 생기면서 호텔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얼음 조각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고요.”

그가 아이스갤러리를 연 것은 특별한 꿈이 있어서다. 한겨울에도 좀처럼 눈을 보기 어려운 도심에서 아이들에게 얼음조각을 통해 꿈을 심어주고 싶은 게 첫 번째다. 물론 얼음조각가로서 비수기인 여름을 어떻게 해서든 잘 견뎌보려는 게 근원적인 이유였지만.

“아이스 갤러리를 열고 첫 여름을 나고 있다”는 설명이 무색할 정도로 그는 인터뷰 내내 끊임 없이 예약 문의 전화를 받았다. 얼음 조각 체험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어서 이른 아침부터 겨울 점퍼를 챙겨 들고 줄지어 선 유치원생들도 눈에 띄었다. 그에게 아이스갤러리는 제대로 얼음조각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곳이기도 하다. 제 시간에 맞춰 납품해야 하는 파티용 얼음조각 판매와 달리 체험 학습을 원하는 아이들을 관람객으로 두고 하는 얼음조각은 얼마든지 시간을 두고 섬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스 테마파크를 여는 게 제 꿈이에요. 지금처럼 조그마한 게 아니라 정말 크게 만들어서 그 속에서 아이들이 동물도 구경하고 뛰놀며 식사도 할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들고 싶어요.”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그는 아예 커다란 얼음덩이를 새로 갖다 놓고 열대어를 하나 조각해 주었다. 밑그림도 없이 30분 만에 조각을 끝내는 그의 솜씨를 보니 테마파크의 꿈이 그리 먼 이야기 같지 만은 않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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