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수(31ㆍ경기지방경찰청 정보과)· 조현(31ㆍ전라북도 도청)
2000년 8월,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전경대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저는 휴가를 틈타 고향인 전북 익산에 내려가 고등학교시절 늘 관심과 애정으로 대해주시던 수학선생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모교의 교장이 되신 선생님과의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선생님께서는 느닷없이 “자네, 내 딸 한번 만나보게나”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만나는 사람이 있던 저는 사정을 말씀드렸지만 그래도 한번 만나보라며 제 호주머니에 따님의 연락처를 넣으셨습니다.
그 후로 선생님의 뜻(?)을 따르지 못한다는 자책감에 찾아 뵐 수 없었으나 선생님께서는 꾸준히 딸의 근황을 전하시며 만남을 권하셨습니다.
“얼마 전 공무원시험 합격했네, 공무원이면 최고 신부감 아닌가.” “동사무소에서 근무 잘하고 있네, 언제 고향 안 내려오는가?” 등 몇 해가 흘러도 선생님의 권유는 계속되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교제중이거나 바쁘다는 이유로 완곡히 거절의 말씀을 전하였지만 솔직히 학창시절 깐깐하시고 원리원칙주의자인 선생님을 장인으로 모시는 게 걱정이 됐던 것도 사실입니다. 흔한 말로 호락호락하신 분이 아니셨거든요.
그러던 중 결국 지난해 어린이날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최후의 통첩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따님이 도청으로 근무지를 옮겼는데, 선 제안이 많이 들어오고 있으니 마지막 기회라며, 친구 결혼식 때문에 상경할 그녀를 한 번 만나보라고 하셨습니다.
마침 사귀던 사람과 헤어진 상태였고 제자로서의 도리는 해야겠다 싶어 약속을 잡았습니다.그런데 그녀와 만나기로 한 이틀 전, 평택 대추리에서 군인과 시위대가 충돌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저는 이틀동안 밤을 새며 근무를 했는데도 일이 끊이질 않아, 결국 약속 장소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 나가지 못하게 됐습니다.
욕먹을 각오를 단단히 한 후 약속을 취소하려 전화를 했는데 웬걸, 그녀는 “바쁘시면 제가 거기로 갈게요” 하더군요. 또한 직접 만나보니 짜증을 내기는커녕 시간 뺏은 걸 미안해 하며 조금도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선생님과 안 닮아 외모도 곱더군요.
첫만남이 인상적이었기에 그 후 서울과 익산을 오가며 데이트를 하며 만난 지 5개월만인 작년 10월 우리는 결혼에 이르게 됐습니다. 더욱이 다음 달이면 사랑의 결실인 왕자님이 태어날 예정입니다.
결혼까지 이르는 데 7년이나 걸린 셈이지만 실제 연애기간이 짧았던 데다 결혼 이후에도 주말부부로 지내 지금도 연애하는 것처럼 설레고 오히려 결혼 전보다 훨씬 행복합니다. 그 때문에 포기하지 않으시고(?) 인연을 맺게 해주신 선생님, 아니 장인어른께 늘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남들처럼 신혼 재미도 제대로 못 누리고 임신한 상태에서 홀로 직장 생활을 해나가며 출산을 앞두고 있는 아내에게 멀리서나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현아, 진작 못 만난 걸 후회할 정도로 늘 기쁨을 줘서 고맙다. 우리 ‘튼튼이’ 잘 낳아 기르고 앞으로도 가려운 등 서로 긁어주며 오래오래 알콩달콩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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