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3,300억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외환보유고에서 달러화 자산을 매각할 수 있다는 중국 당국의 잇단 발언의 진의는 무엇일까.
샤빈(夏斌) 중국 국무원 산하 발전연구중심 금융연구소장은 8일 영국 일간 텔레그라프와의 인터뷰에서 “국제 금융질서에 바람직한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는 전제하에 “막대한 외환보유고라는 ‘핵 옵션’을 가진 중국은 미국 의회의 압력에 대항하는 정치적 협상 수단으로 외환 보유고를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앞서 허판(何帆) 중국 사회과학원 국제금융연구소 부주임도 차이나 데일리를 통해 “엄청난 달러화를 보유한 중국은 위안화가 안정된 환율을 유지한다면 달러화를 줄이지 않을 수 있다”며 은근히 압력을 가했다.
결론적으로 중국 당국이 달러화를 매각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가뜩이나 달러가 약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달러화 매각에 나선다면 국제경제에 미치는 파급은 상상할 수도 없거니와 정치적으로도 대 미국 관계의 파국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텔레그라프 보도 후 8일 유럽 외환시장에서는 유로당 1.3736하던 달러화가 1.3796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현실성과는 별개로 달러 매각 시사 발언은 미국의 대 중국 통상ㆍ환율 압박에 대항하는 협상 카드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중국 당국의 이런 발언이 전해지자 마자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그런 일을 없을 것”이라고 직접 해명에 나선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미국의 중국산 제품 관세부과에 맞서 중국이 외환보유고 매각이라는 보복조치를 선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중국이 외환보유고를 정치적 무기로 활용할 경우 “그것은 무모한 짓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무시할 수 없는 협박용 카드로서 위력을 과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총 보유외환의 70% 정도인 9,000억달러를 미 재무부 발행 채권으로 갖고 있는 중국이 이를 시장에 내다 판다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달러 가치를 더욱 폭락하고 불황에 빠진 미 주택시장을 침체로 몰고 가는 등 미국 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
중국의 이 같은 위협은 중국의 환율조작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산 제품에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환율법안 제정을 추진 중인 미 의회 뿐 아니라 이 법안을 지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유력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클린턴 상원의원 등 미 정계 인사들은 미국의 채무 중 44%가 중국과 일본에 집중된 현상은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치적으로 위험한 상황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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