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 선포’라는 최후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비상사태 선포가 임박했다는 파키스탄 현지 TV 보도에 이어 무샤라프 대통령과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9일 새벽 장시간 통화를 한 것이 알려지면서 파키스탄에 조만간 비상사태가 선포될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됐다. 그러나 이날 열린 회의에서 이 같은 제안은 일단 부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무샤라프 대통령의 측근인 타리크 아짐 파키스탄 정보부 차관은 이날 오전 비상사태 선포 가능성을 논의 중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아니면 훨씬 후가 될지는 말할 수 없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정국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어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최근 미국 고위 인사들의 잇따른 파키스탄 국경지대 폭격 발언도 이 같은 논의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인정했다.
특히 무샤라프 대통령 주재로 이날 열린 정부 고위각료 회의는 비상사태 선포 여부가 진지하게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 후 모하메드 알리 두라니 정보부 장관은 “여당뿐 아니라 다른 정치세력으로부터도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면서 “확실히 논의는 했지만 아직은 시기가 아니라고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사면초가 상태인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비상사태 선포는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꺼내 들 수 있는 마지막 카드라고 보고 있다.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대선을 1년 연기하는 것이 가능해 그만큼 정권을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지난달 국경지대 파슈툰 거주지역과 맺은 평화 협정을 깨고 ‘붉은 사원’ 사태를 무력 진압한 이후로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의 적이 돼버렸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세속주의적 야당도 이프티카르 초드리 전 대법원장의 해임 이후 반 무샤라프 투쟁을 지속해 왔다.
아무리 의회 내에서 간접 선거로 치른다고 해도 무샤라프가 연말 예정된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너무나 정적이 많다 보니 현지에서는 “무샤라프가 대통령을 관둔다면 그날 즉시 암살될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다.
최근 정권 연장을 위해 추진했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와의 권력 분점 논의가 삐걱거리고 있는 점도 무샤라프의 비상사태 선포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무샤라프는 6일 PML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의회가 나를 다시 대통령으로 뽑아달라”고 당부했으며, “군 사령관직에서 사임하는 문제는 선거 이후로 미루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 발언은 부토가 제시한 군 통수권 포기 등의 조건을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이며 따라서 양자간 협상이 물 건너 갔다는 관측을 낳았다. 따라서 무샤라프가 대선을 앞두고 다양한 방법으로 정권 연장을 시도하다 실패할 경우 결국 마지막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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