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로 북한에 파견돼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데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북 정보 수집과 방첩 활동이 주업무인 국가정보 기관의 최고책임자가 대북 특사로 파견됐다는 사실이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정원 라인을 활용한 데 대해 “비밀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면서도 “국정원은 공식 기구이고, 이를 통해 투명하게 진행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국정원이 주도해 정치적 뒷거래로 합의한 의혹이 짙다”(한나라당 정형근 의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북측 통일전선부의 카운트파트로 국정원이 나섰다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이다. 통전부는 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북한 노동당 내 부서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한국민족민주전선 등을 외곽 단체로 가지고 있다.
이들이 주로 하는 일은 크고 작은 남북 회담과 경제 협력 사업, 민간의 교류 사업 등이다. 남측의 통일부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조평통은 1970년대 초부터 각종 대남 공작 사업을 총괄 지휘해 왔는데 이런 측면에서는 국정원과 역할이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국정원의 경우 1차장 산하의 해외정보 수집 파트, 2차장 산하의 국내정보 수집 및 대공수사 파트, 3차장 산하의 대북 파트로 업무가 분담돼 있다.
그런데 이 세 업무를 모두 총괄하는 자리에 있는 국정원장이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전면에 나선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은 역사적으로 남북 정상 간 대화 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서로 가장 믿을 수 있고, 보안이 유지되며, 최고지도자의 의중을 가장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창구”이기 때문이다.
72년 7ㆍ4공동성명 때는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비밀리에 방북해 실질적인 내용을 협의했고, 2000년 6ㆍ15 정상회담에 앞서서는 임동원 국정원장이 2차례 특보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정부는 1월 미북 베를린 회동 이후부터 이전까지 가동하던 모든 대북 라인을 국정원 라인으로 단일화하고, 이를 통해 정상회담을 적극 추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000년 6ㆍ15 정상회담 이후부터 대북 업무에 깊숙이 관여해 온 서훈 국정원 3차장과 김 국방위원장의 측근으로 대남 라인 실세로 떠오르고 있는 북한 최승철 통전부 부부장이 막후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재연 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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