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추위를 견뎌야 하는 일은 히말라야를 오르면서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이다. 그곳에선 해가 지기 전에 하루의 산행을 조금 일찍 마감한다.
적절한 곳에 롯지(숙소)를 정한 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침대 위에 침낭을 펴 놓는 것. 그리곤 옷을 벗는 것이 아니라 두꺼운 옷을 꺼내 한 겹 더 입는다. 해지고 나면 급격히 기온이 떨어져서 여간 추운 것이 아니다. 저녁이면 롯지의 사람들은 유일하게 불이 펴진 어두운 식당에 모여든다.
이곳에서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도 하고 조사한 내용을 정리한다. 또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며, 때론 벽에 기대고 앉아 그냥 사람 구경이나 몽상에 빠져보기도 한다. 그렇게 몇 시간씩 보낸다.
처음엔 침침한 그 풍광이 아주 낯설고 특별한 일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주 어색했지만 이내 익숙해진다. 마냥 흘려보내는 그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소중한 선물이었다. 평소의 바쁜 일상에선 상상하기도 어려운 천천히 가는 나만의 시간이었다.
잠자리에 들 무렵 사람들은 하나씩 들고 온 물통에 뜨거운 물을 받아 방으로 돌아간다. 물통을 수건에 감아 침낭에 넣고 잠자리에 든다. 그 물통의 온기만으로 설산의 밤을 지내야 하는 것이다.
처음엔 추위가 견디기 어려웠지만, 이내 그 고통이 내가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나무들을 바라보는 일에 대한 당연한 대가라는 데 생각이 닿았다.
만일 그 산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모두 따뜻한 잠자리를 마련해주었다면, 또 긴 세월 동안 그 산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방식이 그러했다면 오늘 히말라야의 숲은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산이 있기에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음을 안다. 그래서 그 삶의 방식에는 숲을 망치는 따뜻한 잠자리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지금의 히말라야 숲은 안전하지 않다. 숲을 위협하는 수많은 요소들이 있으며 그것들이 조금씩 확대되어가는 징후가 보인다. 원정대가 버려놓고 가는 장비 같은 문제는 뒤로 미루더라도 죽은 나무 이외에 벌채를 금하게 하니 살금살금 일부러 낸 상처로 죽어가는 나무들도 보인다.
짐을 운반하는 야크와 같은 동물들이 이리저리 풀을 뜯어 가시가 있는 나무를 빼고는 풀과 나무가 남아 나지 않은 곳도 있다. 등산객들의 발길은 길을 내고 그 길은 골로 패어 물길을 바꾸고 큰 사태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런 일을 염려해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들도 보인다. 중요한 곳은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제한을 한다. 무엇보다도 반가웠던 것은 캐나다인 에드몬드 경이 설립했다는 작은 묘포장인데 히말라야의 중요한 수종들의 묘목을 키워 훼손되어진 도시 주변의 숲을 다시 복원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미래의 숲을 준비하는 것이다. 탕보체로 가는 길목에선 한 노인은 그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돈을 모금하여 무너지는 길에 돌을 하나하나 쌓아 길을 다지고 있었다.
히말라야는 보전이냐 개발이냐 같은 해묵은 논제가 끼어들 곳이 아니다. 히말라야의 숲은 반드시 보전되어야만 하는 곳이다. 이 산의 숲들이 아직 온전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 곳 사람들의 산에 대한 경외심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삶을 주관하는 신들의 거처를 함부로 할 수 있으랴’ 하는 그 마음.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마음이 영원히 값싼 물질에 무너지지 않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번을 마지막으로 히말라야의 여정을 마친다. 극한 곳에서의 체험이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일상의 틀을 벗어난 히말라야에서의 시간을 보낸 뒤 내 삶에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이며 버려도 되는 가치 없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순서가 많이 바뀌었다.
히말라야에서 숨 쉬듯, 걷듯, 견디듯 그렇게 천천히 그러나 긴 호흡으로 살아갈 것이다. 고개를 들어 세상에서 가장 큰 봉우리들을 바라보았듯, 언 땅을 뚫고 올라와 자신을 낮추고 살아가는 땅 위에 작은 식물들을 들여다보았듯, 우리의 삶에도 멀리, 크게 그러나 섬세하게 시선을 두고 살고 싶다.
국립수목원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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