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미국은 제2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의 독자적 측면에 주목하기보다는 6자 회담의 전체적 맥락 속에서 정상회담을 바라보려는 시각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8일 "이번 회담은 비핵화를 끌어낼 6자 회담의 지속적 진전을 이룰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고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대북 경제지원이 논의되겠지만 미국 외교 노력의 초점은 6자 회담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여기에는 대북 경제지원도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한 6자 회담의 진전에 도움이 돼야지 그렇지 못하면 전체적 맥락에서 부정적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는 미국의 계산법이 반영돼 있다.
미국이 개성 공단을 통해 북한에 유입되는 현금에 거부감을 보였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미국은 영변 핵시설 폐쇄라는 최초의 가시적 성과도 '채찍과 당근'정책을 모두 사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고 있고 앞으로도 당근 만으로는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에 지나친 당근이 주어지고 그 결과 북한이 비핵화 약속 이행을 지연시킬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데 미국이 경계심을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국은 정상회담 결과가 6자회담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대북 경제ㆍ에너지 지원 논의의 틀을 크게 벗어날 경우 그 뒷처리를 놓고 한국과 논란을 벌일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중국
중국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이 핵 문제 등 한반도 정세 전반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보다는 남북관계에 국한되는 파장을 몰고 올 가능성이 크다고 보면서 정상회담 국면에 대비하고 있다. 특히 정상회담을 계기로 평화체제 수립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남북경협이 진전돼 북중 관계에 변화가 초래될 개연성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신화통신은 "남북이 핵 문제 등 주요 현안에서 큰 이견을 보여 한반도 정세의 질적인 변화는 예상하기 어렵다"며 "남북이 정상간 대화를 통해 긴장완화의 추진력을 높여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언론들은 '물이 흐르면 도랑이 생긴다'(水道渠成) 등의 표현으로 남북 정상회담 정례화를 통한 남북긴장완화의 추진력 회복 등을 예상한다.
중국은 2000년 1차 정상회담 당시 북중 관계와 현 북중 관계간 차이를 의식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차 회담 직전 방중, 중국과 조율했지만 이번에는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
지난해 1월 마지막으로 방중했던 김 위원장은 핵 실험 이후 대북 제재에 가담한 중국과 마찰해왔다. 중국이 정상회담과 북중 관계의 함수에 크게 주목하는 이유이다. 중국은 북미관계 정상화 문제와 연관된 평화체제 수립 논의가 활발해질 경우 미국을 의식하는 대응책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 일본
일본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표면적으로는 환영하면서도 속으로는 불안과 불신을 감추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열리는 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자칫 업적 만들기에 매달려 북한에 성급한 양보를 하는 상황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8일 "북한의 비핵화는 6자회담에서 논의되고 있다. 한국도 그 일원으로서 정상회담에 대응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한 것은 이 같은 걱정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납치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아베 총리로서는 남북의 접근으로 납치 문제가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 걱정이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외무성 장관도 9일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납치문제를 포함한 제반 현안의 해결에 적극 나서도록 촉구해달라"고 요청했다.
일본은 한국과 북한이 6자 회담보다도 남북대화에 중점을 둠으로써 '일본 따돌리기'가 본격화하는 상황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일본은 믿었던 미국과 북한의 접근으로 북한 문제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중이어서 불안감은 더욱 크다.
일본 정부 내에서는 북한이 회담에 응한 배경에 대해 "남북과 북미 관계를 한층 개선해 6자 회담에서 일본을 고립시키겠다는 외교적 의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고태성 특파원 이영섭 특파원 김철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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