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는 헤엄치는 꿈을 꾸었다. 어부 사이에 길몽으로 통하는 ‘물꿈’이었다. 다음날 그는 주꾸미 800여 마리를 낚았다. 그런데 한 마리가 접시를 끌어안고 있었다. 청자 같았다. 나흘 뒤 그는 태안군청 문화관광과에 이 사실을 신고했다.
보름쯤 뒤 그는 또 한번의 꿈을 꾸었다. 누군가 그에게 하얀 물체를 던졌는데, 받아보니 흰 돼지였다. 충남 태안의 어부 김용철씨가 꾼 두 번의 예지몽 덕분에, 깊이 잠들어 있던 고려청자 수천 점이 인양되었다. 근래 우리가 접한 가장 기분 좋은 소식일 것 같다.
▦ 꿈은 늘 일상의 논리 저편에 있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 으로 유명한 정신분석학자다. 그는 도자기를 빌렸다가 깨뜨렸을 때 어떻게 난처한 경우를 모면할까 하는 가상을 얘기한 적이 있다. 꿈의>
먼저 도자기를 빌린 적이 없다고 우긴다. 혹은 돌려줄 때까지 도자기는 멀쩡했다고 둘러댄다. 아니면 빌릴 때 항아리는 이미 깨져 있었다고 말한다. 농담처럼, 꿈이 갖는 헤아리기 힘든 논리를 도자기 깨짐에 비유한 것이다. 왜 도자기였을까? 그는 고대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을 수천 점 이상 모은 유물 수집광이었다.
▦ 유대인이었던 그는 나치에 쫓기면서도 수집품을 정성껏 보존했다. 그는 정신분석이론을 고고학에, 자신을 고고학자에 비유하기도 했다.
고고학자가 땅 속에 묻힌 유물에 햇빛을 보게 해 주듯이, 정신분석학자 역시 인간 무의식의 저변에 깔린 기억이나 욕망을 깨워 현실문제를 해결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가 본 인간정신의 원시적 측면과 고대 유물의 원시세계는 닮아 있었다. 고대 유물과 문화재에는 아름다움 못지않게 신비가 묻어 있다.
▦ 주꾸미 덕분에 고려청자 수천 점이 자태를 드러낸 이 때 마침 문화재 관련 윤리강령이 마련된다. 문화재의 도난이나 도굴, 불법거래 등을 방지하고 골동품 시장을 움직이는 매매업자에게 자긍심과 책임을 일깨워 주려는 강령이다.
문화재 얘기가 나오면 공예인들이 덧붙이고 싶어 하는 말이 있다. 자손에게 문화재를 물려주고 싶다면, 그림ㆍ조각도 중요하지만 지금 제작되는 공예품에도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획일적인 공산품보다는 투박해도 장인의 솜씨가 묻어나는 수제품을 눈 여겨 보라고 한다. 오늘은 제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는 공예품도 세월에 의해 문화재가 되기 때문이다.
박래부 논설위원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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