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한 번 겪었던 일이기 때문일까.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빅 뉴스’가 발표된 8일 금융시장은 전반적으로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경제 전반에 호재임은 분명하지만, 시장 참여자들은 당장의 효과보다 장기적인 영향에 주목했다. 국내외 경제 주체들은 모두 ‘역사적 사건’에 들뜨기보다 1달, 1년 뒤의 시장을 예측하기에 바빴다.
■ 증시 깜짝 상승
이날 증시는 전날에 이어 오름세를 이어갔다. 종합주가지수(KOPSI)는 43.59포인트(2.34%) 오른 1,903.41로 마감, 엿새 만에 1,900선을 회복했다. 코스닥 지수도 전날보다 7.13포인트(0.89%) 올랐다.
상승세는 현대그룹이나 개성공단 입주업체 등 남북 경제협력 관련주들이 주도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날 주가 상승이 정상회담이라는 재료 못지않게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경제 성장세 지속 전망이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한화증권 이영곤 연구원은 “남북정상회담 소식과 더불어 미국 등 글로벌 증시가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단기적으로 투자심리가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외환시장에서는 원화보다 오히려 달러가 강세를 보였다. 정상회담보다 미국 발 뉴스에 더 민감했던 결과다. 원ㆍ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30원 오른 924.2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미 FOMC의 인플레이션 우려 표명이 달러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 즉각 반응보다 장기영향에 주목해야
외국인들은 이날도 증시에서 4,568억원 어치를 순매도했다. 정상회담이란 대형 변수도 18일째 ‘팔자’ 행진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상회담 개최 사실보다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과거 사례로 볼 때 정상회담을 비롯한 남북 관련 이슈나 이벤트들이 증시에 단기적이고 심리적인 영향만 미칠 뿐 장기적인 흐름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황창중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정상회담 소식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나 ‘코리아 디스카운트’ 축소가 기대된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이지만 증시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회담 결과에 좌우될 것”이라며 “2000년처럼 이벤트성으로 끝난다면 단기 호재에 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조재훈 대우증권 투자분석부장은 “2000년에도 증시는 회담이라는 이벤트보다 경기와 펀더멘털을 우선적으로 반영했다”며 “투자자들은 지나치게 흥분하지 말고 차분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환율 측면에서도 마찬가지. 홍승모 신한은행 과장은 “정상회담이 시장의 예상수준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변동 요인으로 의미가 없는 것 같다”며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도 협의 도중의 한 과정으로 보고 시장이 크게 움직이지 않았던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정상회담 자체는 중요요소 아니다"
외국의 시각은 어떨까. 무디스, S&P, 피치 등 3대 국제 신용평가사는 이날 이번 정상회담이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피치는 “두 번째 정상회담이 남북관계에서 중대한 진전인 것은 분명하나 한국이 처해 있는 근본적인 위험에 대한 우리의 시각과 국가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피치는 오히려 “안보위험보다 더 중요한 고려사항은 한국의 통일비용”이라며 “언제가 남북 통일이 이루어질 것으로 가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통일비용을 추산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강조했다.
S&P 역시 “정상회담은 정치적으로 주요한 이슈인 것은 맞지만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올리고 내리는 데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무디스도 “신용등급에 미칠 영향을 논하려면 회담 이후 경제와 재정, 지정학적 의미 등에 대한 추가 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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