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애’. 김현숙(30)의 극 중 이름이다. 평범한 여성이 이영애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삶은 행복할까. 물론 미모가 받쳐주는 여성이라면 “이름도 얼굴처럼 예쁘시군요”라는 칭찬을 받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름은 예쁘시군요”라는 거의 욕설 수준의 비아냥을 참고 살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영애로 분한 김현숙은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만든 <막돼먹은 영애씨> 의 특성상 꾸밈없는 서른 살 노처녀(?)가 평소 느끼는 사회에 대한 분노와 불만을 시청자들이 딱 동의할 만큼의 수준으로 보여준다.
성적인 농담을 일삼는 상사에게 주먹만 한 바퀴벌레를 우려낸 녹차를 주거나 침을 뱉은 토스트를 건네는 장면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직장 여성들에게 통쾌함을 안겨줬고, 지하철에서 성추행한 남자를 끝까지 쫓아가 핸드백으로 묵사발을 만드는 모습은 묵묵히 비뚤어진 세상을 체념하고 살고 있는 시청자들이 박수를 치게 만들었다. “먹다 지쳐 잠드는 사람은 복 받을 것”이라며 살찐 이들을 위로하던 ‘출산드라’에서, 평범하기 그지없는 여성들의 속시원한 대변자 이영애로 나선 김현숙.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2 촬영을 앞둔 그녀를 땡볕이 쏟아지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만났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 , TV프로그램 <개그콘서트> 등 과거 출연작에서 보여준 김현숙의 캐릭터는 괄괄하다. 실제 성격도 그럴까. 시치미를 뚝 뗀다. “물론 극에서 보이는 모습이라는 게 배우의 생활과 과거에서 떼어온 조각을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TV에 비친 다소 과격한 모습은 연출됐을 뿐입니다. A형에 소심한 성격이라 실생활에선 전혀 그렇지 않아요. 모든 것을 주도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나를 끌어주는 스타일의 남자를 꿈꾸는 여자다운 여자랍니다.”
김현숙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그녀를 개그우먼으로만 평가하는 시선이다. 사실 김현숙은 연극을 전공했고 탁월한 노래솜씨로 개그 프로 데뷔 이전에 뮤지컬 무대에 섰던 실력있는 연기자 출신이다.
하지만 인기작들에서 보여진 그녀는 대체로 코믹한 모습이어서 대중은 이를 알기 어렵다. 이에 대해 그녀는 할 말이 많다. “고등학교 때 우연한 기회로 연극에 관심을 두게 됐죠. 이후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다가 개그맨 박준형씨와 컬트 삼총사로 활동했던 연극연출가 정성한씨를 만나 창작 뮤지컬 공연에 참여했고, 이후 운이 틔어 개그무대에서 ‘출산드라’로 빛을 봤습니다.”
그녀는 <막돼먹은 영애씨> 가 단순한 개그물로 보여지는 것을 거부한다. 막 연기자로 일어서는 입장에서 개그우먼으로 캐릭터가 굳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영애씨를 비롯해 등장하는 모든 배우들이 시청자를 웃기는 역할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성차별, 은퇴 남편의 비애, 연상연하 커플의 사랑 등 TV를 보는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사회문제를 포괄적으로 표현하고 있죠.”
김현숙은 개그우먼이 아닌 한 명의 연기자로 평가받고 싶은 욕심이 있는 대신 스스로에 대한 평가엔 냉정하다. “아직 저는 100점 만점에 50점짜리 연기자예요. 부실하다고 느낀다는 게 아니라 진짜 모습을 미처 절반밖에 보여주지 못했다는 의미죠. 오래 가는 연기자로 남고 싶어요. 나이가 좀 들면 교양 시사프로그램, 토크쇼의 진행을 맡는 게 꿈입니다. 아무래도 긍정적인 힘을 통해 난관을 헤치고 성공한 방송인으로 자리잡은 김미화씨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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