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피랍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탈레반이 7일 여성 인질과 여성 수감자 맞교환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여성 인질 문제 처리에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 탈레반이 석방을 위한 명분을 찾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이 제안은 탈레반이 이전의 요구 수위를 대폭 낮췄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다. 탈레반이 그동안 인질과의 맞교환 대상으로 요구한 탈레반 수감자 8명은 지역 사령관급의 중량감 있는 간부였다.
특히 이번 한국인 납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가즈니주 탈레반 조직인 ‘압둘라 그룹’의 사령관 물라 도르 칸이 포함돼 있으며 3명은 아예 아프간 정부가 아닌 미군이 관리하는 수감자였다. 이들에 비해 탈레반 여성 수감자의 비중은 확실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탈레반의 카리 유수프 아마디 대변인도 “탈레반에 여성 전사가 없다”며 “이들은 탈레반 전사에게 휴식처나 음식 등을 제공한 단순한 협조자들일 뿐”이라고 말했다.
여성 수감자 석방의 경우 우리 정부도 아프가니스탄 정부나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길이 한결 커질 수 있다. 지난해 1월 미국 여기자가 납치됐을 때 미국은 이라크인 400여명을 석방하면서 납치세력이 요구한 여성 5명을 포함시켰다.
인질과의 직접적인 맞교환 형식이 아니더라도 ‘죄질’이 가벼운 단순 여성 수감자를 사면하는 방식으로 협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탈레반도 이를 고려해 교착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현실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의 입장 변화는 여성 인질을 장기 억류하고 있는 상황이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이슬람회의기구(OIC), 아랍연맹 등이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이란도 탈레반의 인질 납치를 규탄하는 등 탈레반의 인질 납치에 대한 이슬람권의 비판 여론이 점차 커지고 있다.
여성 인질이 살해되거나 건강 악화로 숨지게 되면 이슬람권 전체가 탈레반에 등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이슬람 원리주의’ 정치조직체를 자처하는 탈레반 스스로도 자신의 원칙에 반해 여성 인질을 살해하기도 어렵다는 관측이다.
실제 탈레반은 2003년 이후 10여건의 납치 사건을 자행하면서도 여성 인질을 살해한 적은 없었다. 4월 인질로 잡았던 프랑스 구호단체의 여성 한 명을 석방했고 2005년에도 이탈리아 여성 한 명을 납치한 지 20여일만에 풀어줬다.
탈레반 입장에서도 여성 인질을 처리하기 위한 ‘명분’이 필요한 상황이다. 여성 인질 석방을 위해 나름대로 할 일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공을 미국과 아프간 정부에게 떠넘기는 효과도 노리는 셈이다.
결론적으로 열쇠는 다시 아프간 정부와 미국에 넘겨졌다. 두 나라가 죄질이 가벼운 단순 여성 수감자 석방에 대해서도 ‘테러단체와의 협상 불가’라는 원칙을 고수할지 주목된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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