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박래부 칼럼] 정직한 정치가의 앞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박래부 칼럼] 정직한 정치가의 앞날

입력
2007.08.07 00:09
0 0

정치에서 정직이 무능과 동의어처럼 들리는 세태가 되었다.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의 낮은 도덕적 평가가 그들의 신뢰도를 계속 끌어내리고 있다. 신뢰도와 존경심이 떨어진 바닥에는 정치적 허무주의와 냉소주의만 무성하다.

예전 추리소설의 한 장면을 다시 인용해 본다. 경찰이 범행의 흔적을 추적하여 지하실로 내려간다. 불이 없는 지하실에 대한 묘사가 신랄하다. ‘…지하실은 정직한 정치가의 앞날처럼 캄캄했다.’

■ 도덕성은 정치의 주요한 요소

도덕성은 역사에서 큰 위력을 발휘해 왔다. 대표적 예가 교황 레오 10세와 사제 마틴 루터의 싸움이다. 로마에 화려한 성 베드로 성당이 지어지던 무렵, 교회의 주요 수입원은 면죄부 판매였다. 예술 애호가 집안 출신인 레오 10세는 성당 건설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유럽 전역에 면죄부 판매 전문가를 파견하여 돈을 긁어 모으기 시작했다.

독일의 시골 사제인 루터는 교회 문에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내걸었다. 죄인을 용서하는 권리는 교회가 아니라 신의 영역에 속하며, 죄의 사함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레오 10세는 학식 높은 신학자 마촐리니에게 루터를 눌러 달라고 요청했다. 마촐리니는 교황은 무(無)오류의 존재라고 옹호하는 반면, 루터는 사생아라고 공격했다. 루터는 굴하지 않고 교회의 부도덕성을 끈질기게 공격했고, 교황은 그를 파문했다.

그러나 독일에 파견된 사절들이 전한 민심은 무서웠다. “열 명의 독일인 가운데 아홉 명은 ‘루터여, 만수무강하기를!’이라고 외치고, 나머지 한 명은 ‘로마에 죽음을!’이라고 외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교황이 죽자 루터의 사상과 개혁운동은 들불처럼 독일 전역으로, 나아가 유럽 전체로 번져갔다.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적 승리의 하나로 평가된다. 그는 도덕성이라는 도구를 의식적ㆍ공개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다. 김영삼ㆍ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장 성능 좋은 무기도 도덕성이었다. 그들은 쿠데타로 집권한 군인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자부했고, 도덕성 아래 지지자들이 모여들었다.

지난 대선에 즈음하여 박세일 서울대 교수가 쓴 ‘대통령의 조건과 덕목’도 도덕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역대 대통령은 조국 근대화 등에서 통치의 정당성을 찾았기 때문에, 개인적 도덕성은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게 우리 정치문화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제는 수신제가형 자기관리의 엄격성과, 높은 개인적 도덕성이 요구되는 개혁시대ㆍ 감성시대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대통령 후보 검증을 하고 범여권이 정치판을 새로 짜고 있지만, 국민은 아무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다. 주변 사람들도 누가 대통령이 될지에는 관심을 보이지만, 현재 후보들에게는 대부분 시큰둥하다.

유권자를 무관심하게 만드는 것은 후보의 예상되는 통치능력보다는 도덕성 때문일 것이다. 공적ㆍ사적으로 숱한 비리 의혹에 싸여 있거나, 기회주의적 행적을 보여온 후보자들에게서 분명히 느껴지는 감정도 있긴 있다. 정치인은 저렇게 후안무치하고 뻔뻔해야 하나 보다 하는 환멸감이다.

■ 감언보다 총체적 삶을 판단해야

혹 도덕성에서 부끄러울 것이 없으나 약한 지지도에 주눅들어 있는 야망의 후보가 있다면,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교황의 거짓 권위와 맞서 투쟁하던 루터 사제처럼 지혜롭고 과감하라고. 유권자의 선택을 돕기 위해서라도 그런 후보는 좀더 과감해야 한다. 도덕적 흠이 없는 후보는 승리할 권리가 있고, 유권자는 후보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정확하게 판단할 권리가 있다.

마음 내키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표를 던져야 하는 유권자에게도 권하고 싶다. 후보의 장밋빛 감언에 귀를 세우기보다, 그들이 어떤 행적을 밟아왔는가를 살피는 것이 더 유용하다고. 과거는 미래를 보는 거울이다. 후보자들의 교언보다는 그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보고 판단해야 한다.

논설위원실장 parkrb@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