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출판계의 산 증인 을유문화사 정진숙(95) 회장이 자신의 출판인생을 담은 회고록 <출판인 정진숙> 을 펴냈다. 출판인>
정 회장은 해방되던 해인 1945년 겨울 을유문화사를 세운 뒤 두 세대가 넘는 60년간 오로지 출판에 몸담아왔다. 이 회고록은 따라서 개인사이면서 우리의 출판사(史)에 꼭 담아야 할 공적 기록물이기도 하다.
경기 화성 몰락 양반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나 일제시대 때 10년간 은행원으로 근무하던 그가 해방 직후 출판에 뛰어든 것은 숙명적인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 시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에게 아동문학가 윤석중, 언론인 조풍연 등이 출판사업을 권했지만 수익을 낼 수 있을지 염려해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고심하던 그에게 집안 어른 뻘인 정인보 선생이 “우리 문화 유산을 되찾는 일, 그런 걸 하는 게 진짜 애국자”라고 불호령을 내렸고, 이후 출판은 그의 천직이 됐다.
책에서 그는 출판사를 시작한 뒤 당시로서는 선구적으로 <소파동화 독본> <그림얘기책> 등 어린이를 위한 책을 펴냈던 일, 한국전쟁 중 인민군이 불을 질러 사무실과 거래장부가 타는 바람에 7,000만원이라는 거액의 빚더미에 나앉은 일, 경제적 곤궁 속에서도 한글학회의 <우리말 큰사전> 이나 본격적인 통사를 지향한 진단학회의 <한국사> 를 펴낸 일, 양주동의 <여요전주> 같은 학술서적을 화려한 양장본으로 출간하자 학자들이 너도나도 학술서적을 들고 와 즐거운 비명을 질렀던 일, 출판인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 출범의 뒷얘기 등을 들려주고 있다. 여요전주> 한국사> 우리말> 그림얘기책> 소파동화>
을유문화사가 발행한 책은 무려 7,000여종. 사흘에 한 권 꼴로 엄청난 양의 책을 펴냈지만 그는 ‘출판은 기업 이상의 것, 돈을 벌기 위해서 출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고수했고 이는 을유문화사가 60년이 넘도록 출판의 명가(名家)로 자리잡은 동력이 됐다.
정 회장은 “천직이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진정한 의미의 천직은 오랜 세월에 걸친 각고의 노력과 인내가 만들어내는 결정체”라며 “책이라는 상품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유익한 삶을 위해 기여했다는 점에서 나의 인생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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