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이라크전쟁을 둘러싸고 앙숙처럼 지내온 미국과 프랑스의 관계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취임 이후 180도 바뀌었다.
친미파로 알려진 사르코지 대통령이 미국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양국의 밀착 속도가 오히려 지나친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프랑스 대통령이 유럽 밖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은 1968년 이후 처음이다. 휴가 중 양국 대통령의 비공식 만남의 가능성마저 나온다.
일간 보스턴 글로브에 따르면 사르코지 대통령은 미국 뉴햄프셔주(州) 울프보로에 있는 위니퍼소키 호수에서 2주간 일정으로 휴가를 즐기고 있다. 위니퍼소키 호수는 전 모나코 국왕 레이니에 공과 그레이스 켈리 부부, 영화배우 드루 베리모어 등 유명 인사들이 즐겨 찾는 하계 휴양지.
사르코지는 이 곳에 있는 마이클 애프 전 마이크로소프트 이사 소유의 대저택에서 머물고 있는데, 1주일 임대료만 3만달러에 이르는 초호화 휴양지다. 프랑스 측은 휴가 사실을 함구하고 있지만 미국의 경호팀이 보안을 위해 몰려들면서 언론에 들통이 났다.
미국 언론들은 사르코지의 이번 휴가를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니콜 톰슨 미 국무부 대변인은 “사르코지 대통령의 방문이 양국간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다음 주 울프보로에서 80㎞ 밖에 떨어지지 않은 메인주 케네벙크포트의 가족 별장에서 휴가를 보낼 예정이어서 양국이 휴가 중 정상회담을 갖는 이례적인 사건이 일어날 지도 초미의 관심사이다. 양국은 정상회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으나 두 정상이 가까운 곳에 머물면서 서로 인사조차 하지않는 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고 외신들은 보도하고 있다.
양국 관계는 전임 자크 시라크 대통령 시절 이라크 침공을 둘러싸고 급속히 냉각됐다. 이 때문에 미국인들은 감자 튀김을 뜻하는 ‘프렌치 프라이’를 ‘이라크의 자유’를 뜻하는 ‘프리덤 프라이’로 비꼬아 불렀고 프랑스산 와인 불매운동을 벌일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었다.
이처럼 껄끄러운 양국 관계를 감안할 때 이번 휴가 동안 양국 정상의 격의 없는 대화는 양국간 우호를 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분석이다. 마침 사르코지는 이란 핵 문제에 대해 미국과 같은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고 미국도 중동에서 프랑스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사르코지의 방문을 긍정적으로 보는 미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휴가를 마뜩찮게 여기는 분위기다. 프랑스 언론과 야당은 국내 노동자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강조하는 대통령이 전용 해수욕장과 영화관이 딸린 초호화 별장에서 휴가를 즐기는 것은 이율배반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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