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 하스 지음ㆍ안성철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발행ㆍ336쪽ㆍ1만800원
이 책을 펴든 당신은 당황할 것이다. 소설이라더니 ‘여기자’와 ‘볼프 하스’란 두 인물이 주고받는 대화만 빼곡하다. 낯설긴 하지만 단순한 형식이라 여기며 쉬이 마음을 놓지 말자. 문학비평지 여기자는 이 책을 쓴 작가와 같은 이름의 소설가를 찾아와 닷새에 걸쳐 당신이 알지 못하는 그의 작품에 대해 묻고 있다. 소설가가 스스로를 인터뷰하면서 소설 속에 또다른 소설을 쓰고 있는 형국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사설 탐정 브렌너를 주인공으로 한 추리소설로 독일어권에서 명성을 얻은 바 있는 볼프 하스(47)는 이처럼 기발한 형식으로 기선을 제압한다. 책을 넘겨가며 구절 하나하나를 꼼꼼이 짚어내는 기자의 날카로운 공격과, 노련하고 의뭉스럽게 질문을 받아넘기는 소설가의 방어가 랠리를 거듭하는 탁구공처럼 가볍고 빠르게 전개된다. 문화 탓일까 번역 탓일까, 심심찮게 구사되는 위트와 유머가 흔쾌히 이해되지 않아 원활한 독서 흐름을 방해하는 점은 아쉽다.
독자의 1차 임무는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소설 속 소설’의 내용을 재구성하는 일이다. 독일의 유력 추리소설상을 여럿 수상한 작가는 소설의 전체상을 분담한 퍼즐 조각을 능란하게 헤쳐놓고는 읽는 이의 지력을 시험한다. 퍼즐을 잘 맞출수록, 오스트리아 산골 마을의 15년 간 날씨를 하루도 빠짐없이 기억하는 독일 청년 비토리오의 사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렇다고 ‘2중 소설’의 안쪽을 들여다보느라 바깥쪽에 소홀한다면 절반의 재미를 놓치게 된다. 비토리오가 헤어진 첫 사랑 아니에게 바친 15년 간의 순정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기자는 책 곳곳의 표현이 성(性)적인 은유 아니냐며 소설가를 몰아세운다. 그 질문이 번번이 작가의 진의와 어긋난 ‘김칫국 해석’일 땐 문학 비평의 자의성을 문제삼던 소설은 후반부로 갈수록 소설가를 수세로 몰며 창작의 자기 검열과 자기 기만을 조소한다.
소설은 여기자의 채 끝맺지 못한 말로 마무리되면서 지금까지의 내용이 녹취록임을 드러낸다. 재치있는 결말 처리 차원을 넘어 독자에게 이 ‘2중 소설’의 또다른 외부를 상상하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 아닐까. 그렇다면 전원이 꺼진 녹음기를 앞에 두고 여기자와 소설가가 나누는 밀담을 채우는 일은 당신이 만끽할 유희다. 독일 저명 문학상인 빌헬름 라베상의 2006년 수상작이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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