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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우리의 의식은 아직 상투를 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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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우리의 의식은 아직 상투를 틀고 있다

입력
2007.08.04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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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복 지음 / 생각의 나무 발행ㆍ600쪽ㆍ1만8,000원유교 중심의 부정적 전근대 유산 '떨어져 보기' 통해 비판적 해석 시도

사회학자 정수복(53)씨. 1989년 프랑스에서 사회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00년대 초까지 강의와 시민운동,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했던 그는 2002년 서울생활을 접고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연구자로 5년간 한국인과 한국사회를 탐구했다.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은 그가 한국사회에 대해 의도적인 ‘떨어져보기’를 시도하며 끌어낸 한국인론이다.

한국인의 내면세계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은 ‘한국의 근대는 미완이고 절름발이’라는 선언에서 명쾌하게 드러난다. 그는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한국이 외형적으로는 근대의 꼴을 이룩했지만, 그 시공간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전근대의 정신적 유산을 떨치지 못했다고 본다.

그가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발생한 황우석 사태가 상징적이다. 이때 한국 지식인들은 “개인이나 공동체나 너무 까발리면 생존하기 어렵다.

큰 공적을 이룬 분들은 공헌도 크지만 과정에서 오류도 있기 마련”이라며 희박한 윤리의식과 도덕불감증을 날것으로 보여줬다. 또한 경제위기 이후 시나브로 확산되는 박정희 전두환 이승만 등 전근대적 지도자들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 역시 그의 확신을 굳혔다.

그는 ‘문화적 문법(cultural grammar)’이란 개념을 동원해 한국인의 내면세계를 비판적으로 읽는다. 문화적 문법이란 구성원 행위의 밑바닥을 가로지르는 마음의 습관, 의식구조 등을 아우르는 개념. 이는 다시 한국인들이 오랜 세월 동안 내면화한 근본적 문법과 20세기 들어와 형성된 파생적 문법으로 나뉜다.

근본적 문법은 현세적 물질주의, 감정우선주의, 가족주의, 연고주의, 권위주의, 갈등회피주의이고 파생적 문법은 감상적 민족주의, 국가중심주의, 속도지상주의, 근거없는 낙관주의, 수단방법 중심주의, 이중규범 중심주의다.

이 문법들의 기원은 유교, 도교, 불교 등 전통종교와 사상인데 지은이는 특히 유교의 부정적유산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다. 가령 유교의 권위주의적 성격 때문에 한국인들은 불합리한 문제가 발생해도 문제 제기를 못했고, 이는 비판과 토론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자율적이고 근대적인 개인’들의 출현을 봉쇄했다는 것이다.

좌파건 우파이건 남한이건 북한이건 이 유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운동권이나 시민단체 내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강한 위계질서나, 사회주의를 내세웠지만 봉건적 수직적 질서를 강화했던 북한사회가 이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한국사회에서 이런 낡은 문화적 문법을 해체할 수 있는 주역으로 청년층과 여성들을 주목한다. 2030이라 불리는 청년세대는 나이, 직위, 영향력으로 유지되던 수직적 위계질서를 인격존중, 설득, 격려로 유지되는 수평적관계로 전환시키고 있으며, 오랫동안 남성지배적 문법에서 배제돼 있었던 여성들도 기존의 문법을 비판적이고 상대적으로 해석하며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세계를 낡은 문화적 문법으로 파악해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희망에서 이 책을 썼다”며 “한국사회에 독자성과 존엄성을 지닌 개인을 그대로 인정하는 개인주의가 고양될 때 낡은 문법들이 해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 유교비판론의 계보 해방직후부터 대두

현대 한국인의 가치관과 규범의 기원을 유교로 보고 이를 비판적으로 통찰한 지식인들의 계보는 해방 직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상윤은 <조선유학사> (1949)에서 모화사상, 당쟁, 가족주의, 계급사상, 문약, 산업능력 저하, 상명(尙名)주의, 복고사상 등 조선의 식민지 전락을 가져온 요인들이 유교에서 기인했다고 파악했다.

사회학자 김경동은 1970~80년대 한국사회의 조직 특성을 위계적 권위주의, 집합주의, 연고주의, 온정주의, 도덕적 의례주의, 이분법적 사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 등으로 분석했다.

상하의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위계적 권위주의는 신유학의 전통에 비롯됐으며, 이는 일제와 군부정권들을 거치면서 개인의 창의성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또한 명분과 의례를 강조하는 유교적 전통에서 비롯한 도덕적 의례주의는 겉으로는 보편적 구실을 내세우면서 속으로 개별적 이익을 쫓는 위선적 행태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김경일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1999)에서 유교가 사농공상으로 대표되는 신분사회, 토론 부재를 낳은 가부장 의식, 협잡을 부르는 혈연적 폐쇄성, 스승의 권위 강조로 인한 창의성 말살교육 등을 야기했다고 비판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한일합방, 6ㆍ25전쟁,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사태 등 국가적 위기는 유교문화 속에 내재돼있던 자체적 모순이 분출된 것이라고 주장, 격렬한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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