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레인 크로우 지음ㆍ신혜경 옮김 / 마음의숲 발행ㆍ246쪽ㆍ9,500원
“끝까지 충실하게 크는 나무는 느리게 자란다.” 월든 호수의 정기를 온몸으로 호흡하고, 명저 <월든> 을 남긴 19세기 생태론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이다. 웃자라기 좋아하는 후기산업사회의 맹점을 미리 보기라도 했던 것일까, 세월이 흐를수록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명제다. 월든>
한 세기도 더 지나, 미국의 비트 세대에 속하는 시인이자 번역가ㆍ음악가인 토마스 레인 크로우(58)는 문명의 그늘을 벗어난 오지인 노스캐롤라이나 깊은 숲에 오두막을 지었다. 문명의 이기와 재화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4년(1978~1982년)을 꼬박 그곳에서 지내며,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자연에 순응하는 법을 스스로 배워 나갔다. 2005년, 이 책은 빛을 보았다.
“깊이 스며드는 고독을 직시하라. 그것은 나의 내면에 집중해 자신과 즐겁게 나누는 대화인 동시에, 시간에의 강박관념을 떨쳐내 진정한 자유와 완벽한 무질서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어린 시절의 벗이었던 흑곰, 야생 칠면조, 고슴도치, 까마귀들과 직접 소통하는 일이다. 숲을 거닐다 뱀을 만나면 너무 멀리 왔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라는 신호임을 알아차리고 그에 순응하는 생활이다. 태양의 운행을 중심으로 나의 모든 일상을 재구축하는 일이다.”
크로우는 이 말처럼 애팔래치아 산맥 동쪽에 있는 블루리지의 남쪽 끝자락 언덕을 아름답게 수놓는 온갖 나무와 꽃들의 이름을 일일이 알아내고 그들을 호명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자신의 구슬땀을 통해 자연과 관계 맺는 일이다. 커다란 곡괭이 한 자루를 들고 600여평짜리 땅을 일구는 일이다. 혹독한 겨울을 버텨낼 땔감을 준비하는 일을 기꺼이 하라는 자연의 소리를 알아듣는 일이다. 괭이, 도끼, 나무망치, 쐐기 등 연장들을 때맞춰 갈무리해 줘야 함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생존을 위해 자연과 공존해야 됨을 알게 되는 일이다.
하루어치의 노동을 끝내고 오두막으로 돌아와서, 크로우는 사계절의 변화를 세세히 일기장에 기록한다. 자연에 밀착해, 자연의 섬세한 주름까지 읽어냈다. 사냥도, 낚시도, 나만의 맥주 만들기도 자연과의 관계 맺음 속에서 허여됨을 감사했다.
혈기방장하던 포크 가수 밥 딜런이 찾아온 이야기, 인디언 보호구역에 살던 체로키 인디언들로부터 자연과 타인을 존중하며 사는 법을 배운 이야기, 소화를 시키느라 찬장바닥에서 달그락대던 뱀 이야기를 하는 크로우에게는 이유없이 자신을 덮치려 하던 독수리의 기억마저 새롭다. 끝모를 욕망으로 쉴 수 없는 현대인의 삶은 도대체 무엇을 위함인가. “작은 오두막 현관에 홀로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내가 존재함을 느낀다. 진정으로, 바로 이 곳에.”(225쪽)
원문의 섬세한 굴곡을 따라가는 신혜경(36)씨의 역문은 흐르는 강물 같다. 번역을 끝내고 경기 가평군 유명산 자연휴양림으로 가서 쓴 후기에서 그는 “지구상 마지막 숲의 모습을 기록한 듯 생생하고도 애틋했다”고 돌이켰다.
루카치의 명저 <소설의 이론> 이 “밤하늘의 별이 길을 알려주는 지도가 됐던 시절은 행복했다”는 한 마디로 빛난다면, 이 책은 잃어버린 숲, 그 행복을 찾아가는 지도이다. 저자는 지금 숲에서 은거중이다. 소설의>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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