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피랍 사태가 본격 협상국면으로 돌입하면서 5, 6일 미 워싱턴에서 열리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아프간에서의 '테러와의 전쟁'을 논의하기 위해 피랍 사태 이전에 일정이 잡힌 것이지만 한국인 피랍 문제가 시급한 현안이 돼있는 만큼 양 정상은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표명해야 할 처지이다.
미 국무부 톰 케이시 부대변인은 "피랍 문제가 우리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라며 "미_아프간 정상회담에서 반드시 거론될 것이라고 예단할 수 없지만 두 지도자의 관심사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케이시 부대변인은 이어 "부시 대통령은 한국인 인질의 안전한 석방에 대해 관심을 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는 부시_카르자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피랍자와 탈레반 수감자를 맞교환하자는 탈레반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정상회담에서'테러리스트에게는 양보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기본 원칙에 획기적인 변화가 올 것으로 전망하기는 어렵다.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남ㆍ중앙아 담당 차관보는 2일 정상회담을 사전 설명하는 자리에서 "죄수 교환 등 납치범들에 대한 양보와 관련된 미국의 정책은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납치범들에 대한 양보는 더 많은 납치나 인질 억류를 가져올 뿐"이라고 못박았다.
바우처 차관보는 한국이 미국의 원칙에 융통성을 보여줄 것을 요청했는지 여부에 대한 질문에 "한국측에 물어보라"라며 "미국의 정책과 원칙들은 잘 알려져 있으며 여기서 많은 시간을 들여 그것을 반복하지는 않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피랍자 석방을 위해서는 군사력을 포함한 모든 필요한 압력을 동원할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미국을 방문중인 아프간 피랍사태 관련 한국 국회의원 대표단을 면담한 니컬러스 번스 국무부 차관도 "(피랍자 석방을 위한) 또 다른 창의적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미국 정책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끝내 어떤 언질도 주지 않았다.
결국 이번 정상회담에서의 논의 방향은 정상회담 시점까지 아프간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 지, 미국이 공식적인 원칙 외에 어떤 내부 복안을 갖고 있는 지에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테러리스트에게는 양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더욱 강하게 강조하면서 군사적 대응 가능성까지 흘리는 것을 보면 수감자 맞교환의 기대를 버리고 몸값 요구쪽으로 협상 방향을 틀도록 탈레반을 압박하려는 의도도 감지된다.
다만 미국과 한국, 아프간 사이에 막후에서 벌어지는 삼각 대화의 결과에 따라서는 아프간 정부가 전격적으로 탈레반 수감자 석방을 감행하고 미국은 이를 비난하면서도 사후 묵인하는 방식의 해법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할 아프간 정부에 한국정부가 어떤 보상을 해 줄 수 있는 지가 관건이 될 수 있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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