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족의 선조인 치우(蚩尤)를 한국인들이 자기네 선조로 조작했다." 최근 중국의 여러 신문에서 치우를 소재로 한 한국 역사소설들이 중국인의 선조를 빼앗아갔다고 비판한 내용이다.
이런 기사가 한국에서 새삼 기사가 된 이유는 붉은 악마의 마스코트인 치우가 한국인의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이 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치우는 〈사기〉를 비롯한 중국의 여러 문헌에 탁록이라는 곳에서 화하족의 우두머리인 황제(黃帝)에게 패해 죽임을 당한 동이족의 우두머리로 나온다.
그렇다면 이런 기사는 맞는 것일까? 베이징 서북쪽 탁록현에 가면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이라는 사당이 있다. 국가 승인을 받아 현청에서 1995년에 만든 것인데 중화민족(한족을 비롯한 56개 민족으로 구성됐다는 현대 중국인)의 세 시조를 모셔놓았다. 황제, 염제, 치우가 그것이다.
황제는 유사 이래 중국인의 유일한 시조로 여겨졌던 신화적인 인물이다. 황제와 철천지원수였던 치우가 시조로 격상된 것은 이제 12년밖에 안 됐다. 평범한 중국인들은 아직도 치우가 자기네 조상이 된 줄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일부 한국인들은 오히려 중국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아비를 바꾸고 할아비를 가는 환부역조(換父易祖)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 치우는 누구의 조상인가
치우는 재야 사학자들이 사료로 즐겨 인용하는 우리 쪽 기록 〈규원사화〉와 〈환단고기〉에 고조선의 전신인 배달국 14대 천황으로 등장한다. 또 중국 기록과는 반대로 탁록의 전투에서 황제를 무찌른 것으로 돼 있다. 이런 설왕설래가 생기는 것은 고대 중국에서 동이라고 부른 족속을 우리 민족의 직접 선조라고 보는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현재까지 연구된 바에 따르면 진(秦)나라 이전 중국 사서에 나오는 동이족이 한국인의 직접 조상이라는 고고학적, 문헌적 증거는 아직 없다.
치우가 한민족의 조상이라는 식의 얘기가 나온 것도 위의 두 책이 세상에 알려진 1970년대 이후이다. 황제나 치우는 실존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신화적인 인물이다. 묘족(苗族)은 옛날부터 치우를 자기네 조상으로 생각했다.
그런 인물을 조상으로 보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관념 내지는 심정적 행위이다.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중국 언론에서 "한중 문화 쟁탈전"이라고 부른 이런 복잡한 논란이 동북공정을 비롯한 중국의 역사 왜곡 프로젝트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몽골인인 칭기즈칸까지 중국인의 조상으로 끌어안으려다 보니까 이런 해괴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과열 민족주의 때문에 까마귀도 고생을 한다.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은 삼족오다. 많은 한국인이 일본 선수들이 이 문양을 달고 뛰는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삼족오는 일본 전설에도 등장한다. 당연히 일본도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삼족오는 중국 고대 무덤 벽화에서도 드물게 발견된다. 삼족오는 고대 동북아에서 여러 민족이 공통으로 썼던 문양인 것이다.
● 과열 민족주의 해법을 찾자
한국과 중국은 고대사 문제로, 한국ㆍ중국과 일본은 근현대사 문제로 서로 발목을 잡고 있다.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힌 것 같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중국의 저우언라이 총리는 일찍이 1963년 북한의 조선과학원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역사를 왜곡할 수는 없다. 도문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 이래 중국 땅이었다거나 심지어 옛날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다. 모두 역사학자 붓끝에서 나온 잘못이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지만 귀 기울이는 나라는 별로 없다.
까마귀한테 물어볼까? 그럼 아마, 한국 사람은 '까악까악'했다고 할 것이고, 중국 사람은 '와와'했다고 할 것이고, 일본 사람은 '가가'했다고 할 것이니 또 어쩌겠는가?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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