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무장단체에 억류된 한국인 인질 23명은 칸다하르로 가는 도중 탈레반이 지배하는 가즈니주(州) 카라바흐 지역의 시장에 들러 산책한 뒤 다시 출발하다가 납치당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마이니치(每日) 신문이 2일 아프간 경찰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오후 흰색 대형 버스를 타고 가던 이들 일행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카라바흐 지역의 레오나이 시장에 내렸다. 상점에서 아이스크림도 살 겸 약 30분간 시장을 산책한 이들은 버스로 돌아와 출발한 직후 탈레반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됐다.
아프간 경찰 간부는 일행 중 이슬람 여성의 착용을 엄격히 금하고 있는 민소매 셔츠 차림의 여성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시장 풍경을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하는 등 일행은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런 모습 때문에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납치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경찰 간부는 “이 시장은 탈레반이 사실상 지배하는 곳이기 때문에 주민 대부분이 탈레반 지지자”라며 “시장에서 한국인 일행을 본 주민이 탈레반에 연락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미 시사주간 뉴스위크도 한국인을 납치한 탈레반이 카불과 칸다하르를 잇는 도로에서 인질 대상을 찾고 있었다고 1일 탈레반 고위 지휘관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탈레반은 카불_칸다하르 간 고속도로에서 인질로 삼을 외국인을 물색하던 중에 한국인들이 타고 있던 흰색 버스를 발견했다.
탈레반은 오토바이를 타고 버스 옆으로 바싹 붙은 뒤 AK_47 소총과 수류탄을 운전사의 머리에 들이대며 버스를 멈추게 했다. 납치범들은 무전기와 휴대폰으로 교신하면서 버스를 인근 마을로 끌고 가 한국인들을 내리게 한 뒤 5개 그룹으로 나누어 카라바흐와 인근의 안다르, 가즈니시 부근 다흐야크 등 여러 지역에 분산 수용했다.
탈레반은 납치 직후 1대5의 비율로 아프간 정부에 인질 23명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탈레반 수감자 115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3월 납치한 이탈리아 기자 1명과 탈레반 죄수 5명을 맞교환한 전례를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아프간 정부가 협상을 지연시키자 탈레반은 석방 요구 수감자 수를 23명으로 줄였고, 현재 8명의 명단을 아프간 정부에 넘긴 상태라고 이 잡지는 전했다.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이날 “한국인 인질 중 16명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인질들은 가즈니주에 없으며 자불, 칸다하르, 헬만드주 등 다른 주로 나뉘어져 억류돼 있다”고 말했으나 자세한 위치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는 앞서 1일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한국인 인질 21명은 현재 가즈니주 카라바흐, 안다르, 데약 등 3개 지역의 9개 마을에 분산 억류돼 있다”고 말한 것과 배치된다.
아마디는 이날 대두된 아프간 정부의 군사작전에 대해서도 “탈레반 지도자들은 무자헤딘(전사)에게 이에 대비할 것을 명령했다”며 “우리 조직은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아프간 정부의) 군사작전은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달 22일 시체로 발견된 독일인 뤼디거 디드리히가 탈레반이 쏜 총탄으로 살해됐다고 AFP통신이 2일 보도했다. 그 동안 독일 정부 측은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던 그가 억류 상태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병사했을 가능성을 제기해 왔다.
그러나 독일 쾰른에서 시행한 부검 결과 디드리히는 살아 있는 상태에서 총탄 2발을 맞고 사망했고, 탈레반이 사체에 총탄 4발을 쏜 것으로 판명됐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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