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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각하와 산덕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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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각하와 산덕여왕

입력
2007.08.0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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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일'로 더 잘 알려진 강신성일씨가 얼마 전 TV에 모습을 드러냈다. 백발의 '베토벤' 파마머리 스타일은 화려한 변신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칠순의 고령에도 탄탄한 몸매는 여전했다. 올해 초 특별사면으로 풀려나기 전 초췌한 얼굴에 덥수룩한 수염으로 뒤덮였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막내딸은 "아빠가 하루에 수십 번씩 엄마(엄앵란)를 주물러주고 설거지를 한다"며 모처럼 되찾은 화목함을 만끽하는 표정이었다.

'만인의 스타'였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정치판에 뛰어들고 또 어느 날 금품수수로 구속된 것을 지켜본 국민들은 배신감과 함께 전율을 느꼈다. 아무리 멀쩡한 사람도 처참하게 망가뜨릴 수 있는 정치판의 무서움을 새삼 실감한 때문이다. 그는 교도소를 나오면서 "다시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한 마디를 단물 빠진 껌처럼 내뱉었다.

대선이 다가오자 연예인들의 줄서기는 여지없이 재연되고, 이를 바라보는 팬들의 심정은 착잡해진다. 드라마와 영화를 보며 함께 울고 웃어 친숙했던 연예인이 느닷없이 정치 구호를 외치는 장면을 보는 것은 혼란스럽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지지하는 예체능인 모임에서 연기자 이덕화씨가 "각하, 힘내십시오"라고 발언하자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다. 박근혜 후보 지지 연예인 봉사단체 발대식 성명에서 "제2의 선덕여왕" 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각하'니 '여왕'이니 하는 표현을 거침없이 하는 일부 연예인들의 행태는 연예계는 물론 정치권에서까지 구설수에 올랐다.

연예인들의 정치참여를 무조건 백안시하거나 부정적으로 보자는 건 아니다. 정치나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건 전적으로 개인이 선택할 문제다.

그러나 그들이 평소에 조금이라도 정치에 관해 철학이나 소신을 보여주었더라면 당혹감은 훨씬 덜했을 것이다. 후보들이 제시한 정책에 대해 나름대로의 주장과 견해를 갖추고 이를 바탕으로 지원에 나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지 않고서는 선거철만 되면 한 자리 잡겠다고 나서는 정치철새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안타까운 것은 우리 정치판이 연예인의 정치활동을 수용할 만큼의 수준이 돼있냐는 점이다. 연예인은 그저 표를 얻기 위한 '얼굴마담'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는 정치인들이 많다. 이들의 정치적 소견이나 전문성을 활용하고자 하는 생각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들이 설혹 정치에 진출한다 해도 하는 역할은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선거에서 지기라도 하면 불이익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2002년 대선때 이회창 후보 지지운동을 벌였던 심현섭, 박철씨와 정몽준 후보를 도왔던 김흥국씨는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노사모의 핵심 세력으로 맹활약해 온 명계남씨와 문성근씨가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온전히 연기활동에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정치 현실에서 연예인들이 소신과 원칙을 지키며 정치판에 뛰어들어 성공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아놀드 슈워제너거나 영화배우 출신으로 대통령까지 오른 로널드 레이건은 당분간 남의 얘기일 뿐이다. 지금의 정치풍토에서 연예인의 정치활동은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제2,제3의 신성일을 팬들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이충재 부국장 겸 문화부장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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