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금융감독위원장으론 처음으로 3년 임기를 다 채우고 떠나지만, 아직도 할말이 많은 듯 싶었다. 아니 36년의 공직생활을 뒤로하고 훌훌 떠날 때가 되어서인지 평소라면 가리던 말도 쏟아냈다.
퇴임(3일)을 앞둔 윤증현(사진)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이 1일 마지막 간부회의와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법과 원칙을 강조해 대과 없이 떠나는 것은 행운"이라며 "금융시장에서 큰 스캔들이 없었고 시장이 안정됐으며 금융 회사들의 수익성, 건전성이 좋아진 데에도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정부의 금산분리 원칙에 반대하는 입장을 또 다시 피력했다. 오랜 소신이기도 하지만, 떠나는 마당에 '정부와의 조율' 여부는 이제 상관없다는 듯 목소리가 유난히 커졌다.
윤 위원장은 "임기 중에 글로벌 금융회사를 육성하고, 산업자본의 효율적 활용을 추진하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실현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며 "하지만 이 같은 문제를 공론화하는 초석을 놓은 것으로 소임을 다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산업자본의 효율적 활용이란, 한마디로 금산분리 원칙을 폐기해 재벌(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가 금융감독당국 수장으로 있었던 3년간 금융시장은 유례없는 평온을 이어왔다. 질적으로 한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평가가 많다. 과거 '관치 전력(前歷)'의 소유자이지만, 금감위원장 취임 이후엔 '시장자율론자'로 변신에 성공했다는 게 주변의 반응이다. 오랜 숙제였던 생명보험사 상장문제를 매듭지었고, 금융기관 건전성과 증시 주변질서도 잘 잡았다.
하지만 금산분리 완화를 강조한 그의 최근 행보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한쪽에선 "코드 맞추지 않고 눈치도 보지 않고 속시원히 할 말을 다한 보기 드문 소신 관료"란 평가가 많다. 반면, 다른 한쪽에선 "금감위원장이 무슨 논객인가. 부처간 조율되지 않은 개인발언으로 혼선만 부추기고 후임자에게 부담만 줬다"는 비판도 나온다.
윤 위원장은 간부회의 후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보다 넓은 주제에 대해 개인생각을 편히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능력 있고 성과있는 최고경영자(CEO)는 계속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좀 일 좀 할만하면 나가야 한다"며 "그런 면에서 대통령 연임도 빨리 이루어져야 하며 개인적으로 5년 중임제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은행장 등 CEO들이 연말에 연탄을 나르는 사회공헌을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큰 수익을 낼 것인가, 일자리를 더 늘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금융의 발전가능성을 강조하는 대목은 이날 발언 중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이었다. 윤 위원장은 "우리의 성장동력은 금융서비스에서 찾아야 한다"면서 "선물ㆍ옵션을 시작하자마자 세계 최대 규모의 시장을 일궈낸 우리나라 사람들은 '금융DNA'가 충만하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윤 위원장은 행시10회 출신으로 구 재정경제원에서 세제실장, 금융정책실장 등 요직을 섭력했다. 금융정책실장 시절 환란을 맞았으며, 그 책임을 지고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로 5년간 인고의 세월을 겪다 참여정부 출범 후 금감위원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멤버로 함께 활동했던 고 이수인 전 의원의 처남이기도 하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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