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불편을 최소화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사태가 잘 해결돼 빨리 환자들에게 정상적인 서비스를 하고 싶습니다.”
1일 오후 1시40분께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4층 내과병동 외래진료 접수처. 병원의 직장폐쇄 속에 4명이 일하는 이 곳에서 유독 한 사람이 눈에 띈다. 의사 가운을 입고 가슴에 ‘자원봉사’라고 적힌 녹색 띠를 두른 소화기내과 김원호(55) 교수다. 그는 “진료가 없는 시간에 나와서 돕고 있다”며 “빈 시간에 돕는 것이라 불편하진 않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방사선과 외래진료 접수처에서는 응급실에서 파견된 수련의(인턴) 3명이 접수를 받고 있었다. 수납처 앞에 “노조 파업으로 의사들이 접수 중입니다. 환자 분들은 불편하시더라도 양해 바랍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는 가운데 한 교수가 번호표를 체크하며 환자들을 안내했다.
의료진이 직접 창구에서 접수를 받거나 환자들의 민원상담을 하는 등 ‘도우미’ 역할을 하는 데 대해 일부 환자와 내원객들이 당황해 하는 모습도 보였다.
의사들이 진료실 밖으로 나선 이유는 연세의료원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근무인력 부족현상이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연세대 의대 교수평의회는 자원봉사단을 조직해 지난달 30일부터 하루 40여명씩 외래 접수 부서와 약무국 등에서 일하고 있다. 조제실에서 약을 갈거나 약봉투 환자 이름을 최종 확인하는 단순 작업도 의사들 몫이다.
간호등급제 상향 조정과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 등을 둘러싼 노조 파업이 23일째를 맞은 신촌세브란스병원은 대체로 한산하고 차분했다.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직원과 자원봉사자 등으로 병원의 기능을 근근이 이어가는 모습이다. 12~19층의 입원병동은 절반 이상이 비어 있거나 아예 불이 꺼져 있기도 했다. 병원 관계자는 “파업 이후 평균 수준인 외래 69%, 입원 48%, 수술 61%의 병원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파업 농성으로 연일 시끄러웠던 병원이 조용해진 것은 사측이 내린 직장폐쇄 조치로 파업 노동자들이 영동세브란스 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집회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사측은 노조의 로비 농성으로 환자들의 불편 호소가 잇따른다며 지난달 31일 파업 노조원들의 병원 출입금지를 내렸다.
김 교수는 “병원은 자동차 회사와는 달라서 파업의 피해가 시시각각 환자들에게 돌아간다”며 “노동자든 사측이든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들이 아파 며칠째 병원을 찾고 있다는 강모(45ㆍ여)씨는 “파업을 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겠지만 환자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방식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노조원들은 사과의 뜻을 표하면서도 ‘여론몰이’식의 비판에는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파업에서 최근 복귀한 한 직원은 “응급실과 수술실 등 중요 부서에서는 전혀 차질 없도록 최소 인력을 투입했다”며 “병원과 언론은 노조의 이기주의로만 몰아가고 있어 답답하다”고 불만을 표했다. 내과병동 간호사 김모씨도 “환자들이 많이 참아주고 있다”며 “입원 환자 수를 병원측이 대폭 줄이는 바람에 못 오시는 환자들에겐 그저 죄송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한편 노조원 1,000여명이 영동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감에 따라 이날 예정됐던 노사간 협상은 열리지 않았다. 노조는 사측이 파업참여 조합원만 신촌세브란스에 출입하지 못하게 해 단결권을 침해했다며 전날 법원에 직장폐쇄 해제 가처분 신청을 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진실희 인턴기자(서강대 신문방송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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