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인은 서럽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국가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알아주는 이가 없다. 금융권의 대출장벽은 높고 정부규제는 심하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늘 대기업의 몫이다.
외면당한다고 해서 가치가 빛을 잃는 건 아니다.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로비는 중소기업인의 존재와 공로를 오롯이 인정해주는 공간이다.
'중소기업인 명예의 전당'으로 불리는 그곳엔 우리에겐 생소한, 그러나 초우량 기업으로 성장해 경제발전에 기여한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얼굴 동판부조가 전시돼 있다. 당사자에겐 영예와 위안을, 동료 중소기업인에겐 자부심과 염원을 안기는 자리다.
기업은행의 중소기업인 명예의 전당 헌정은 2004년 시작해 올해로 4회째를 맞았다. 시장점유율 신용평가등급 업적 기술개발력뿐 아니라 사회적 신망까지 종합적으로 심사해 매년 3, 4명의 중소기업인을 엄선하고 있다.
올해는 곽노권 한미반도체 회장, 정봉규 지엔텍홀딩스 회장, 정우철 일삼 회장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기업은행의 거래 중소기업 18만 곳의 CEO를 자체 심사했고, 후보자 3인에 대한 선정위원회(위원장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도 개최했기에 의미가 깊다.
이들은 모두 20년 넘게 한길만 걸었다. 곽 회장은 1980년 경기 부천에서 당시만 해도 초창기던 반도체 장비 국내외 공급사업을 시작해 회사를 반석 위에 올렸고, 정봉규 회장은 "신의와 약속"의 초심을 잃지 않고 27년 동안 환경산업에 매진해 국내 최초로 MPB 집진기를 국산화했다.
정우철 회장은 중졸 출신으로 76년 홀로 사업을 일궈 합성피혁용 착색제를 자체 개발해 시장점유율 수익성 안정성 모두 동종 업계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는 "농사꾼이 되라는 부모님의 권유가 못마땅해 술에 빠져 살던 나날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며 "'행복한 가정 건설에 기여하자'는 경영이념이 인정을 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기업은행의 중소기업인 명예의 전당 헌정은 강권석 행장의 아이디어다. 행장 취임 첫해에 이 상을 만들었다. 그는 "오랜 공직생활을 한 나조차도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잘 몰랐는데 직접 업체를 다니면서 중소기업의 경이로움을 목격했다"며 "2001년 노벨기념관 방문당시가 떠올라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건실한 중소기업이 있었기에 기업은행도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면서 "기업과 은행이야말로 상생의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기업은행은 1일 창립 46주년을 맞아 명예의 전당 헌정식과 아울러 '대한민국 최고의 종합금융그룹' 중장기 비전도 제시했다. 강 행장은 "창립 50주년을 맞는 2011년까지 총자산 220조원, 시가총액 20조원을 달성하겠다"며 "성공적인 민영화를 위한 경쟁력 확보, 은행의 균형성장, 종합금융그룹화 추진, 글로벌화추진 등 '4대 전략방향'을 강조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