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근교에 사는 최모(64)씨 부부의 일과는 젊었을 때 못지않다. 최씨는 오전엔 요가와 수중운동으로 건강을 다지고, 오후에는 백화점에 쇼핑을 가거나 나들이를 한다. 얼마 전엔 또래 아파트 주민들과 단체로 일본 홋카이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렇다고 최씨가 부유층은 아니다. 임대수입이 좀 있지만 펑펑 쓸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이제서야 교육 결혼 같은 자녀들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났다”며 “앞으로는 우리 자신을 위해 좀 즐기면서 살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부동산을 팔든, 역모기지를 하든,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노후는 궁핍하지 않게 보낼 생각이다.
#2. 서울 강남에 사는 주부 박모(60)씨의 가계부는 먹을 거리 같은 생필품보다는 외식과 스포츠댄스 강좌 등 문화센터 수강, 골프연습 비용으로 채워지고 있다. 박씨는 “예전에는 노후 대비와 자녀를 위해 기본적인 의식주 이외에는 한푼이라도 아끼고 저축해야 했지만, 이제는 건강하게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한다.
‘5060’세대가 소비 주체로 뜨고 있다. 미국에 베이비붐 세대, 일본에 단카이 세대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5060’세대가 있다. 한창 일하던 30~40대땐 부모나 자녀를 부양하느라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이제는 시간과 돈, 그리고 심리적 여유를 자산으로 ‘자신을 위한 투자’에 기꺼이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더욱이 한국전쟁 직후인 1955~63년 사이에 태어난 한국판 베이비붐 세대 816만 명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은퇴하기 시작하면, 5060세대는 우리나라 소비의 중추계층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계는 50대 이상 시니어 세대의 소비가 경기가 좋건 나쁘건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꾸준히 증가한다는 점에서 주목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올 상반기 20~40대 고객들의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최대 5%까지 떨어지는 등 주춤했지만, 70대 이상 여성의 경우 22%나 증가하는 등 50대 이상은 4~22%의 꾸준한 증가세를 나타냈다.
특히 5060세대는 자신을 가꾸기 위한 소비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롯데백화점의 올 상반기 구매 고객을 분석한 결과, 50대 이상 시니어 고객이 전체 매출액의 29.5%를 차지했으며 이들이 주로 구입한 품목도 의류와 명품, 그리고 레저용품이었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도 머리 희끗희끗한 장ㆍ노년층이 쉽게 눈에 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문화센터의 경우 회원 4명 중 1명은 50대 이상의 실버 회원. 해외여행을 위한 영어회화, 외국에 사는 손주들과 이메일이나 채팅을 하기 위한 컴퓨터 강좌, 그리고 메이크업 강좌도 실버회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김자영 문화센터장은 “50대 이상 회원 중 절반은 백화점 매출 순위 10% 안에 드는 VIP고객이다”며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시니어 세대는 자기계발과 쇼핑을 더불어 즐기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프리미엄급 제품이나 서비스의 성장을 이끌고 있는 것도 시니어 세대이다. 1,000만원을 넘는 크루즈여행 상품도 돈과 시간에서 여력이 있는 50대 이상이 아니면 엄두내기 어렵지만 예약이 꽉 찬다고 한다.
롯데관광 홍보팀 김이정씨는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온 50~70대를 중심으로 수요가 많아져서 지난해부터 지중해, 알래스카, 북유럽 등 다양한 크루즈상품을 개발해 내놓았다”며 “연령이 높아질수록 여행에서의 식사나 숙소의 질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고가의 상품을 많이 선택한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이 중ㆍ장년층을 주 타깃으로 내놓은 한방화장품 등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들은 10% 가까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시니어산업 컨설팅업체인 시니어파트너즈의 원승재 과장은 “과거의 실버세대와 달리 요즘의 50대 이상 시니어 계층은 경제력이나 건강이 향상돼있어 자기계발과 여가에 관심을 보이며 적극적으로 소비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문준모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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