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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희생자 심성민씨 황량한 땅에서 스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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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희생자 심성민씨 황량한 땅에서 스러지다

입력
2007.08.0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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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름다운 청년이 선혈을 뿜으며 황량한 땅에서 끝내 스러지고 말았다. 그는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아프가니스탄인들과 고통을 함께 하기 위해 그 척박한 땅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선한 눈동자를 가진 아이와 병자들의 손을 잡았다. 그것이 그의 죄 아닌 죄가 됐다. 사랑의 힘으로 그들을 위무하려 했던 그는 그만 싸늘한 주검이 되고 말았다. 스물아홉의 반듯한 대한민국 청년 심성민. 그는 고 배형규(42) 목사에 이어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 탈레반에 납치됐다 피살된 두번째 희생자가 됐다.

그는 어릴 때부터 시각장애인인 고모(70)를 보고 자라며 늘 장애인의 고통을 가슴 아파 했다고 한다. 가족과 친지들은 그가 “장애인, 불우이웃을 어떻게 하면 더 도울 수 있을까”“조금만 양보하면 이렇게 많은 이들이 편해지는구나”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가 교회에서 장애인 학생을 담당하는 사랑부 교사로 활동한 것도 그런 의식과 무관치 않은 일이다. 주말마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장애인 조모(37ㆍ여) 김모(27ㆍ여)씨는 그를 이렇게 기억한다. “선생님은 단 한번도 거르지 않고 우리를 돌봐주시고 가르치셨어요. 정말 따뜻하고, 미소가 아름다운 분이셨어요. 그런데 왜 그분이 그런 일을 당해야 하나요.”

그는 누가봐도 반듯한 생활을 해온 모범 청년이었다. 지인들의 뇌리에 그는 믿음직한 친구, 성실한 직장 동료로 각인돼 있다. 경남 진주 경상대학 졸업후 학생군사교육단(ROTC) 장교(39기)로 임관, 포병장교로 군생활을 마친 뒤 그는 경기 성남의 한 IT업체에 취업했다.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ROTC 동기(39기)였던 구석찬(29ㆍ진주 케이블 서경방송 기자)씨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의협심이 남 달랐던 친구였다”면서 “늘 남보다 한 발 앞서 솔선수범했다”며 애통해 했다. 심씨의 옛 직장 동료(34)는 “같이 지낸 시간은 짧았지만 건강한 신체와 바른 정신을 가진, 요즘 보기 드문 성실한 동료였다”며 울먹였다.

아버지 심진표(62ㆍ경남도의원)씨와 어머니 김미옥(60)씨에게 그는 집안의 대들보요, 천사 같은 장남이었다. 심진표씨는 “지금껏 속 한번 썩이지 않은, 심성 고운 아들이었다”며 “두 달 전 회사를 그만두고 한미 FTA 협상 타결로 위기를 맞은 농촌을 살려보겠다며 농업 전문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청송(靑松) 심(沈)씨 10대 종손이다. 1940년 4월 일본 나가사키(長崎)현에서 비밀결사 재일학생단(在日學生團)을 조직해 항일운동을 했던 독립유공자 심재인(沈載仁ㆍ1918~1949) 선생이 할아버지다. 그는 집안 거실에 걸려 있는 할아버지의 훈장을 보며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는 사실을 늘 자랑스러워 했다고 한다. 유족들은 그의 희생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신을 기증하기로 했다.

고성=이동렬기자 dylee@hk.co.kr진주=정창효기자 ch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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